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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싸라 Jan 05. 2024

뭐든지 잘해야 재밌는 법

실력으로 상대를 앞서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 재미도 느껴진다

 새해 첫날 우리 가족은 집에서 가까운 편인 몰(shopping mall)에 들렀다. 내일부터 출근하는 나를 배려해 큰 액티비티 없이 소소하게 서점도 들르고 저녁도 먹자는 취지였다. 한데 지하 주차장으로 가던 도중 '토이저러스(ToysRus)' 광고판을 본 딸이 거기로 가자고 한다.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은 이미 시원하게 떠난 지 오래다.  


 몰 2층에 위치한 그곳에서 우리 딸은 한참을 꼼꼼히 살펴보다 '세트(SET)'라는 보드게임을 선택했다. 친구들과 학원에서 몇 번 같이 한적 있는데 재밌었다며 집에서 우리와 같이 하고 싶다고 말이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몇 가지 각자 해야 할 일을 한 후 이 '세트'라는 보드게임을 펼쳐 같이 빙 둘러앉았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12장의 카드를 모두가 볼 수 있게 펼친 후 규칙에 맞는 3개의 카드를 먼저 고르면 된다. 그 규칙이란 건 앞에 깔린 카드의 그림이 총 4개의 속성들(모양, 색깔, 개수와 음영)에 대해 모두 같거나 모두 달라야 한다는 거다. 모든 카드가 소진될 때까지 이 과정을 계속 거쳐 최대한 많은 카드를 확보하는 이가 이긴다. 자, 카드는 최대한 무작위로 잘 섞었고, 규칙도 파악이 됐으니 이제 즐길 순간이다. 호호호, 아니 이제 이길 순간이다. 


 한 판 두 판 진행된다. 친구들과 이미 이 보드게임을 해본 적이 있던 딸은 익숙하게 '세트'를 외치며 카드를 쌓아가고 있다. 처음이니 익숙지 않은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며 좀 더 집중해서 바닥에 깔린 카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다시 그렇게 몇 판이 흘러간다. 그렇게 정신없이 딸과의 게임 한 판이 끝났다. 결과는, 볼 것도 없이 딸의 압승이다. 곧바로 할 일을 마친 아내가 합류했다. 아내도 처음이기에 간단하게 규칙을 설명하고 우리는 곧바로 게임에 돌입했다. 적어도 2등이라고 생각하며 좀 전보다 더 집중해서 바닥의 카드를 쳐다봤다. 쳐다보는 내 눈앞에서 딸과 아내는 서로 '세트'를 외치며 주거니 받거니 작은 승리를 쟁취하고 있었다. 최종 결과 난 딱 한 판을 이겼고, 딸과 아내는 승리의 기쁨으로 서로 환호했다. 


 지금까지 해온 거의 대부분의 게임에서 나의 압승은 언제나 당연한 거였다. 딸이 7살 됐을 무렵 가르쳤던 '훌라'는 지금껏 3년이 넘도록 같이 즐기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앞서고 있다. 딸의 최애(崔愛) 놀이 중 하나인 '원카드' 조차 내 생각에 내가 조금은 앞서고 있는 것 같다. 한데 이 게임은 차원이 달랐다. 너무나도 극명한 실력차로 어떻게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딸과 아내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 판 더'를 외쳤다. 난 비에 젖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아, 재미없어. 너무 어려워. 나 좀 더 공부 좀 하고 다시 해야겠어"를 외치고 스르륵 빠졌다. 


 게임은 재밌다고 한다. 근데 가만히 보면 게임 그 자체가 재밌다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피드백과 보상으로 인해 재미를 느낀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평소에 즐기는 놀이를 딸에게 소개해줄 때 항상 조심하는 부분이 있다. 처음 시작하는 딸이 그 놀이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실력이 늘 때까지 어느 정도 수준을 낮춰준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압도하면 딸은 현격한 차이에 지레 겁을 먹고 더 이상 같이 하지 않으려 했다. 지는 것도 아슬아슬하게 져야 다음 판의 승리를 기약할 텐데, 그래야 집중이라는 재미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즐길 수 있을 텐데. 오늘부터 특훈이다. 딸과 아내를 시원하게 꺾는 그 순간을 위해. 역시 게임도 놀이도 공부도 인생도 뭔가 잘하는 순간이 있어야 재미도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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