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마음이라면

by 지수연

엄마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엄마도 자주 할머니가 보고 싶은데 그것도 참 쉽질 않아. 내 엄마 만나러 가는 길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니. 용돈이라도 듬뿍 드려야 하는데 말이야. 멀기도 하지만 여유 생길 때만 보러 가려니 할머니 얼굴을 자주 볼 수가 없어. 효도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도 비슷한 대사가 있었다. 나요, 우리 엄마 집도 사주고 싶고요. 우리 아빠 똥차도 바꿔주고 싶어요. 그게 다 내 마음인데 그게 다 돈이잖아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다들 거짓말하면서 사실 이 마음도 다 돈이었잖아요.


돈이 전부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없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사람 도리조차 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첫 번째 사실만을 인생의 교훈이라 배우며 살아왔다. 대부분의 미디어와 사람들이 돈이 전부가 아니라 말했으며, 돈이 없으면 사람 노릇 못한다 가르치는 어른은 없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마음도 돈이었다. 용돈 한 푼 없이 부모에게 사랑을 말하는 일이나 커피 한 잔 내밀지 않으며 감사를 표현하는 일은 도리에 어긋났다. 이 숨겨진 진실은 어려운 현실에 뒹굴어 본 이후에야 알게 되는 체험형 교훈이었으며, 돈이 얼마나 사람의 인품을 좌우하는지, 개인이 개인을 판단하는 데에 돈이 얼마나 큰 영역을 차지하는지 지겹도록 보고 난 후에야 체념하듯이 깨달아지는 교훈이었다.


기독교 경전에는 아굴의 기도라는 것이 있다. '나를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옵시고 매일에 필요한 양식을 주소서 _ 잠언 30:7' 라는 구절로 유명한 기도다. 기도의 뒤에 붙는 설명은 이렇다. 내가 부하여 신이 누구냐 묻지 않도록 하시고 내가 가난하여 신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종교의 여부를 떠나서 나는 돈에 대하여 이토록이나 바르고 정직한 자세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가장 의문인 것은, '부하게도 마옵시고' 만을 올바른 가치인듯 배우며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 모습이다. 내가 신이라면 부유해진 후 신이 누구냐 묻는 놈이나 가난하여 신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는 놈이나 도긴개긴 괘씸할 듯한데 어쨌거나 신이 아닌 나는 그 괴리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돈이라는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 원석 같은 가치만을 추구하며 사는 삶. 그런 인생은 이 땅에서는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신의 곁에서나 가능한 일이기에 현실에 지친 사람들이 신의 곁을 그토록 간절히 갈구하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힐링이니 치유니 하며 찾아다니는 것은 어쩌면 이런 세상에 적응하는 노하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배우며 자란 어른들이 그 가치에 동의하고 또 부정하며 번민하는 과정. 그 과정을 사는 우리의 혼란함은 기어코 우리의 몫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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