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가 없는 건 죄가 아니죠

by 지수연

한 가지에 모든 걸 쏟아내어 결과물을 얻어내는 사람들이 훨씬 더 큰 비율을 차지할 게 분명하지만, 누구에게나 통용될 법한 이야기를 쏙쏙 피해 가는 인간도 세상엔 늘 있기 마련이다. 가령 나 같은 인간들.


하루 며칠에 몇 개월을 곱해야 하는 기나긴 시간을 오직 한 가지에 쏟아붓는 일 같은 건 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A를 하고 점심을 먹고 A를 하고 저녁을 먹고 A를 하다가 잠이 들어 A에 대한 꿈을 꾸는 일 같은 것을. 가령 J.K. 롤링이 그런 방식으로 해리포터 연작을 써내어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재산이 많은 조 단위 재벌이 되었다 한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글을 쓰거나 자격과 능력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하거나 DIY 미니어처 하우스를 만들거나 아무튼 그게 뭐라도 그 안에 홀딱 빠져들기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는 쪽을 속 편하게 여기는 종족들이 있다. 알고 보면 생각보다 꽤나 넉넉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대개 끈기 없는 인간이나 큰 일을 하기에는 자격미달인 인간 정도로 치부되기 십상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종족들이 '내가 이렇소' 하고 자신의 성향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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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세상에야 조금 뻔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성향이 우열과는 아주 무관하다는 사실을 한 번 더 되짚지 않을 수가 없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를 맞이하더라도ㅡ그 일이 잘 마무리되어 훈훈한 결말을 맺거나 혹은 실패하여 다 집어치우더라도ㅡ 언젠가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이고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으면서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분리시켜 활용하는 것 : 빠른 속도로 다른 인간이 되는 것, 즉 집중력을 짧고 굵게 끌어다 쓰는 것이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그것 역시 그 나름대로의 에너지가 상당히 필요하다.


한 때는 나 자신도 스스로를 부족한 인간으로 치부하곤 했는데 온갖 별짓을 다 해보고 시궁창을 데굴데굴 굴러본 후에야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아, 현재는 스스로의 성향을 죄책감 없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루에 세 시간 A를 하고 두 시간 B를 하고 다시 세 시간 C를 하는 것이 하루 종일 A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능률을 보인다는 사실을 스스로 검증한 후에는 그랬다. 이제 나는 스스로의 끈기 없음을, 세상 오만가지에 관심을 많아 여기저기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성격을 부족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시간보다 중요한 건 효율적인 나만의 방법을 스스로 깨닫는 일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가르쳐 주질 않아서 깨우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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