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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Feb 03. 2019

나이를 불문하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겁니다.

70세 언저리를 살고 계신 할머니의 방송통신대학 입학이 확정되었다.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신 할머니는 몇 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중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은 후 작년 겨울 대망의 수능을 치렀다. 생각보다 시험이 쉬웠다던 할머니의 말과는 다르게 점수는 꽤나 황망했지만, 어쨌든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할머니는 설렘 반 기대 반의 마음으로 개강을 기다리고 계신다.


어르신들이 모여있는 학교에서는 몇몇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시험 커트라인 점수를 넘기지 못해 교장실로 불려 가곤 했다. 아이고 어머님 아버님, 공부를 더 열심히 하셔야지요. 타박을 하는 교장 선생님 앞에서 어르신들은 예예, 열심히 해야지요. 대답을 하거나 아이고, 한다고 했는데 어째 이럴까요. 한탄을 하기도 하셨다. 짝꿍이 오래 결석을 하면 모두가 좌불안석이었다. 한 번은 방학이 끝나고 보자던 할아버지가 영영 먼 곳으로 떠나버린 일도 있었다. 장례식장에 가보셔야지요. 짝꿍이셨잖아요. 며느리의 말에 할머니는 대꾸 없이 한숨을 쉬었다. 방학이 끝나면 만나자더니, 하늘도 무심하셔라. 슬퍼하시며.


며칠 전 전해 들은 친척 어르신의 이야기다. 수능 대박엔 실패했지만 방송통신대에서 법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할머니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느라 하루하루가 꽤나 분주하시다. 가끔은 (90세의) 아는 언니를 만나 공부의 즐거움을 한껏 나누기도 하신다니 이야기를 듣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창창한 서른셋을 사는 나의 친구는 회식 자리에서 들은 뜬금없는 이야기에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음악에도 패션에도 이렇게 관심이 많다니, K씨 젊게 살기 위해서 정말 노력하시네요. 팀장님의 한 마디였다. 내 친구 K씨는 내가 지금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들은 건가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서른일곱이 서른셋에게 젊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 가당키나 하냐며 서글퍼하던 친구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육십이거나 칠십이거나 아무튼 한참 더 연륜이 있는 어르신이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내 친구가 들어야 했던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딱 두 가지뿐이었다. 서른일곱의 팀장님이 서른셋의 내 친구를 자신과 같은 프레임으로 묶어서 바라보고 있으며, 팀장님 자신이 스스로를 젊지 않은 나이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친구의 말이 마음에 닿았다. 나는 열세 살에, 스물세 살에 좋아하던 것들을 여전히 좋아할 뿐이잖아. 이제 겨우 서른셋이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좋아하던 모든 것들이 '젊게 살기 위한 노력'으로 치부된다니, 이렇게 속상할 수가 없어. 나는 토닥토닥 그녀를 다독이며 1920년에 태어난 김형석 교수님의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팀장님의 책상 위에 고이 놓아두라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건네주었다.


인생에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진실이 몇 가지 있다. 이젠 너무 늦었다, 자격이 없다, 배우고 깨닫는 일에 의미가 없다, 스스로 늙어버렸다 여기는 그 순간을 기점으로 진정한 노화가 시작된다는 진실을 아는 이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말 따위를 뱉을 시간에 80점 시험지를 들고 신나게 아들 내외를 만나러 가거나 자식뻘의 교장 선생님 앞에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거나 희끗한 머리를 긁적이며 수능 고사장을 나온다. 그러니까 지구 어딘가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글픈 말을 뱉을지언정 우리는 진실을 살면 된다. 스무 살에 좋아하던 콜드플레이와 코듀로이 자켓과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마음 내키는 대로 좋아하면 된다. 낯선 것에 설레며 언니든 동생이든 맘이 잘 맞는 이와는 격 없는 친구가 되면 된다. 나이를 불문하고 배우고 싶던 것을 부끄럼 없이 배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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