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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연수 Oct 05. 2018

그 날의 택시

행복한 택시 기사의 결혼에 대한 지론

택시를 타는 건 언제나 조금 불편했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낯선 사람과 단둘이 어딘가를 향한다는 것 역시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그렇게 미친 듯이 비가 내려서, 학생들에게 '선생님, 집에 어떻게 가시려고요'라는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날도 택시를 탈 일은 없었을 테다.


말없이 빗속을 달리던 아저씨는 차가 밀려 잠시 정차한 사이에 딸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 왜. 애는 자니? 서서방 좀 그만 괴롭혀라. 어쩌다 너 같은 애를 만나서는. 애비 걱정은 마라. 빗 속을 어찌나 잘 뚫고 다니는지 영화 주인공이 따로 없다. 그래그래, 아이고, 이제 좀 움직이네. 끊자"

'어쩌다 너 같은 애'같은 말을 뱉으면서도, 거울에 비친 아저씨의 눈가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아가씨는 결혼했어요?"

앗, 불길한 질문.

"아니요, 아직"

"몇 살쯤 됐어요?"

"30대 초반이에요"

나의 불편한 기색을 읽으셨는지 아저씨는 으응,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말을 잇지 않았다.


삼십 분가량의 고요함이 흘렀다. 라디오 소리는 사부대듯 작았고 바퀴가 빗물을 가르는 소리만 연이어 들렸다. 비가 이렇게나 많이 오는데 서울 끄트머리까지 아저씨를 데려가려니 신경이 쓰여 물었다.


"댁이 어디세요?"

"나요? 경기도 살아요. 저 반대편 경기도요"

 아이고, 돌아가려면 한참 고생하시겠구나 생각하는데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운전하고 그러죠. 내가 딸이 셋인데 막내딸이 미술을 하거든. 돈이 많이 들어요"

그렇게 이런저런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집 밥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캐물어보는 건 아닐까 긴장했던 나는 움츠린 어깨를 내려놓았다. 아저씨는 고교시절 문학 선생님처럼 나긋나긋 말했고 나는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 큰 딸이 음악을 하고 싶어 했어요. 근데 내가 말렸지.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게 아니면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는데 본인이 내 말을 잘 새겨들었나 봐요. 결국 공대를 가서 지금 남편도 만나고 대기업에서 좋은 직급까지도 올라갔어요. 아까 전화 온 애가 우리 큰 딸인데 말이야, 걔 결혼할 때 참 웃겼어요. 우리 딸내미 남편이 우리 딸보다 직장도 연봉도 조금 더 떨어지거든. 근데 친척들이 얼마나 그걸 물고 늘어지는지 말도 못 했어요. 더 잘난 남자한테 보내야지 왜 그렇게 모자란 결혼을 시키냐는 거예요. 나는 항상 정직과 선함이 인생 최고의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산 사람이에요. 그래서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대꾸하지 않는 습관을 들였는데 그때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말했어요.


'어르신, 형님들. 저 서서방 인사하러 왔을 때 직장, 연봉 이런 거 하나도 안 물어봤습니다. '우리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가' 딱 그거 하나 물어봤어요. 왜인 줄 아십니까. 형님들 살아보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우리 와이프 진짜 사랑해서 결혼했거든요. 그래서 살면서 좀 힘들고 지지고 볶아도 아휴 그래, 하면서 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단 말입니다. 남들이 아들 하나가 없어서 어쩌냐 해도 나는 내 사람이랑 토끼 같은 딸내미들 하고 상추 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더라고. 어르신, 형님들 듣기에 지랄염병이라 해도 할 수 없지만 저는 내 새끼들, 지들이 사랑한다는 사람하고 결혼시키는 게 아빠로서 최고로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저씨의 이야기에는 '육십 평생'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아내와는 적어도 삼십 년, 혹은 사십 년을 사셨을 테다. 순간 나는 멍하니 말을 잃었다. 흔히 들을 수 없는 아저씨의 낯선 이야기에, 나는 끝내 대꾸할 문장을 찾지 못했다.


딱 예상만큼 나온 택시비를 결제한 후 집 앞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던 시간.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그리고 사랑하는 이가 생각났다. 막연히 그려보았다. 우리가 만들어갈 앞으로의 시간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무어라 고백하게 될지. 매일 걷던 익숙한 길을,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오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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