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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Jul 25. 2017

과도한 감정이입의 늪  

연민이 아닌, 객관성이 그리운 날들  


오늘도 나는 과다 연민을 주체하지 못하고 카페 한복판에서 휴지로 눈시울을 찍어내고야 말았다. 내가 좋아하는 지인이 노력한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이 슬퍼서였다. 내가 너무 잘 아는데. 그녀가 얼마나 값없는 선의를 베풀었는지 내가 너무 잘 아는데. 그녀보다 내가 더 서러웠다. 나는 '아휴 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나네요' 라며 몇 살 언니인 그녀 앞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고 그녀는 깔깔 웃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연민이 흘러넘치는 사람이다. 우는 사람을 보면 영문도 모르고 함께 울어버리는 사람. 속상했던 이야기를 전하다가 그 마음이 떠올라 다시 한번 울어버리는 사람. 선한 성정이라 여길 법도 한 이 마음은 간혹 연민이 아닌 분노나 우울을 향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도가니'를 읽을 때는 가장 잔인하게 악을 처단하는 방법을 고민했으며 '백야행'을 보고는 며칠을 동굴 속에 있는 듯한 기분으로 생활해야 했다.



'만약에 이렇다면 어떨까'를 상상하다가 그 상상 속에 빠져 감정이 변화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생각의 끝이 예술의 창조이거나 기술의 발명이거나 종교적 깨달음인 사람들도 세상에 꽤 존재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부류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운이 좋으면 작은 이야기 하나를 써내어 몇몇의 공감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개는 감정에 휘청이다 현실로 돌아와 해야 할 일들을 한다. 


나 이외의 것에 쉽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예술적 자질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혹은 이타심이 강한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반대로 이야기해도 말은 된다.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견고함을 유지하는 것이 예술가의 자질이라거나 이타심이 강한 것은 이기심이 강한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하면 더 그럴듯하지 않나. 필요한 정도를 넘어섰을 때 득이 되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감정이입 또한 마찬가지다. 코 끝이 찡해지려 할 때마다 누군가가 내 정수리를 탁 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요즘 나는 연민이 아닌 객관성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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