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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Dec 21. 2018

딸을 보러 갑니다.

자식을 향한 마음이 아니었더라면

독일 프랑크프루트 공항. 경유지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독일 땅을 밟았는데 풀내음 하나 맡을 수 없다니 아쉬운 마음이 뭉게뭉게 차올랐다. 공항 내 기념품 가게의 마그네틱 판넬 앞을 서성여봤지만 추억할 거리도 없는 기념품은 서랍 속 어딘가에 처박힐 것이 뻔했다.


다음 비행기 탑승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사십 분. 나는 게이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침침한 눈을 희번덕 떠가며 쥐톨만 한 핸드폰 유심을 쓰리심으로 갈아 끼웠는데 아, 어째서인지 먹통이다. 이 놈의 리퍼폰. 내 이럴 줄 알았지. 일단은 방법이 없으니 핸드폰의 시차 적응을 기다리자며 마음을 다독이던 중이었다. 누군가 저어 여기가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 타는 곳 맞나요 하고 말을 걸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의 언니뻘로 추측되는 한국인 아주머니였다. 탑승권을 확인하니 바로 옆 게이트. 나는 혹여나 아주머니를 다른 곳으로 보낼까 염려스러워 눈앞의 숫자와 탑승권을 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네 맞아요. 조금 후에 저쪽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아주머니는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혼자는 처음이라 뭐하나 쉬운 게 없네요 했다. 영어도 잘 모르는데 글씨는 또 어찌나 작은지 몇 바퀴를 돌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는 베를린에 여행을 가시느냐고 물었고 아주머니는 아휴,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우리 딸내미가 거기 살거든요. 자식 보고 싶은 마음 아니었으면 나 이 짓 절대 못했을 거예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하루를 꼬박 비행기에 묶여서. 아주머니의 양 손엔 땀이 흥건해 캐리어의 손잡이의 고무 같은 것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열흘 후 해가 바뀌면 엄마는 환갑을 맞이한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기에는 환갑을 사는 것이 대단한 일이었다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요즘 세상에 61세란 아직 살 날이 까마득한 나이이지 않은가. 대단(히 복잡)한 환갑잔치 대신 가족 여행이 통용되는 분위기로 보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빠듯한 살림에 먹고살기가 바빴던 엄마 역시 해가 바뀌면 처음으로 여권을 발급받는다. 여행지와 형식을 정하며 우리는 고민이 많았다. 패키지여행 경험이 없는 나는 낯선 것을 눈 앞에 둔 이들이 으레 그렇듯 경계심이 먼저 앞섰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기념품 강매나 쉴 틈 없는 일정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만 떠올랐다. 


자유 여행을 가면 우리 많이 싸울까. 나의 물음에 엄마가 답했다. 싸우겠지. 한국에서도 싸우는데, 몸이 힘들면 더 그렇겠지. 하지만 그것보다도, 엄마는 영어도 뭣도 잘 모르잖니.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 사람 많은 거리에서 너 놓치면 큰일 나는 거 아니니. 부모를 잃어버릴까 종종거리는 아이 같은 대답에 나는 멈칫했다. 나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때마다 엄마가 하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얘, 너는 엄마의 세상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어쩜 그렇게 다른 세상 이야기를 하니. 


그랬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랐다. 내가 여행다운 여행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심하는 동안 엄마는 낯선 두려움 앞에 겁을 먹었다. 딸을 잃어버릴까 봐.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어버릴까 봐. 베를린에 간다던 아주머니가 문득 떠올랐다. 땀에 흠뻑 젖은 아주머니와 손 끝의 탑승권. 자식 보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으면 못 했을 거예요. 기쁨과 걱정과 피곤이 뒤엉킨 목소리.



부모보다 조금 더 배우고 조금 더 당당하며 현실에 익숙한 자식들은 대개 그렇다. 부모의 불안감을 부모의 두려움을 부모의 시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가 되면 엄마의 마음을 알 거라는 말에 '으응, 근데 엄마. 이 사과 디게 달다' 따위의 대답이나 하고 앉아있는 것이 자식 없는 자식들의 현주소다. 중년이 처음인 엄마. 빠르게 뒤바뀌는 세상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엄마. 나와는 다른 속도를 가진 엄마. 그리고 그녀보다 조금 더 현실에 익숙한 나는 자꾸만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멋진 중년으로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일도 자연스러운 우아한 중년. 하늘하늘한 투피스를 입고 쇼핑을 하는 중년. 엄마의 말이 옳았다. 나는 엄마의 세상을 눈곱만큼도 몰랐다. 엄마의 세상은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늘어가는, 길을 잃어버리기 딱 좋은 곳이었다. 엄마가 '너는 엄마의 세상을 잘 모른다.' 말할 때마다 나는 대꾸했다. 엄마도 엄마의 외동딸이어 본 적은 없잖아. '엄마가 되어서 엄마 마음을 알고 나면, 너도 눈물 쏟을 거다.' 말할 때마다 나는 대꾸했다. '나는 엄마가 되면 엄마 마음을 알겠지만 엄마는 영원히 외동딸의 마음은 모르겠지.' 그러니까 모든 것이 그럴듯한 동문서답이었다. 엄마의 불안한 세계를 나의 기준으로만 들여본 대답들.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길, 나는 경유를 위해 다시 프랑크프루트 공항에 내렸다. 그리곤 지난번 서성이던 기념품샵에서 나무로 만든 소박한 마그네틱을 하나 샀다. 이 작은 나무에 베를린으로 향하던 아주머니와 딸의 행복을 담았다. 아니, 나와 엄마의 얼굴을 담았다. 그것을 꼭 쥐고 나는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우리는 다른 세계를 살지 않을 것이다. 다른 레일을 달릴지언정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명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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