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번민하게 될 이야기
그가 말했다.
'솔직히 있잖아, 모든 건 결국 감정이입의 문제인 것 같아. 어떤 사건이나 죽음도 감정이 실려버리면 결국 내 이야기가 되는 거잖아. 나는 그런 생각이 좀 골치 아프고 번거로워.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키운 아이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걸 외면할 수 있어. 아, 오해는 하지 마. 내가 떳떳하다는 의미는 아니야. 그저 나 같은 인간도 있다고 말하는 거야.'
마음이 저릿한 이야기였다. 그를 손가락질하고 싶진 않았다. 결국은 나의 이야기,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세상에 수두룩하게 쌓여가는 아픔에 전부 마음에 싣는다면 어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몰랐으면 좋을 뻔했다' 생각하진 않지만 '몰랐으면 편했겠지' 싶은 마음은 있다. 마음이 실리는 모든 것에 계산 없이 마음을 싣고 어째서 세상은 이래야만 하는 걸까, 인간과 신을 원망하기도 하는 인간이 내 모습이기에 그랬다. 발 벗고 나서서 세상을 뒤집을 수도 없는 주제에 이렇게 공감 능력이 높으니 새삼 비효율적이기까지 하다.
무언가에 마음을 준다는 것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일과 다름없다. 필연적으로 마주할 깊은 슬픔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아픔이 언제 어느 시간 오더라도, 그 깊이가 얕거나 아주 깊거나 영영 구제받을 수 없을 만큼 쓰릴지라도 나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구구절절한 문장이 가득한 계약서에 우리는 결국 서명을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과 살아있는 모든 생명과 혹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과.
가끔은 '잘' 외면하는 이들의 한 토막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잘' 외면하는 법을 모른다. 중립을 잘 지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정신을 차려보면 안타깝게도 나는 늘 슬픔과 안타까움이 휘몰아치는 파도 위에 서 있다. 그래야 할 사람에게, 그러지 않아도 될 사람에게. 생명과 세상에 기꺼이 마음을 주며 속 편하지 않은 방향을 선택하게 되어 버린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봐도 나는 이쪽을 선택해야 시간이 흐른 후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난다.
오랜 시간, 그의 말이 각인처럼 남았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하면 모든 걸 외면할 수 있어. 어쩌면 이건 내가 평생을 번민하게 될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