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비가 와서

by 지수연

아주 어릴 적에는 하늘이 갈라진 듯 쏟아지는 비를 좋아했다. 그런 날엔 어디에 들어가 있어도 아늑한 기분이 들어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마음이 들떴다. 그러다가 언제였나, 대지가 낮아 물에 잠긴 집을 뒤로한 채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하는 이의 모습을 접한 후로는 더 이상 세찬 비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곳이 나와 내 가족의 자리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시들해졌다. 재난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의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이야기. 자연 아래의 한낱 인간이 무얼 어쩔 수 있겠나.


그래도 천성을 온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 후로도 비가 토독토독 내리는 날에는 밖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부산한 사람들을 한참 구경하곤 했다. 마시지 않아도 될 따듯한 커피를 굳이 사고 '사랑은 비를 타고'의 한 장면처럼 예쁜 우산을 흔들흔들거리며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걷다가 우뚝 멈춰 섰다. 집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주차되어 있던 차 밑에서 익숙한 고양이 하나가 축축한 것을 물고 나왔다. 비 오는 날의 고양이라니. 심지어 뭘 물고 있는 거야.



빌라와 주택이 많은 오래된 동네에는 고양이가 엄청나게 많다. 날이 좋을 때는 여기가 고양이 동네인가 사람 동네인가 싶을 정도다. 나는 그곳에 있는 급식소에 매주 방문하여 몇 키로의 사료를 쏟아붓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텅 빈 그릇을 꿈뻑꿈뻑 바라보는 고양이들을 만나게 되어 '어이구 미안해 미안해' 사과하고야 만다. 오며 가며 밥을 먹는 언저리의 아이들만 해도 족히 열 댓마리는 넘을 거라 추측하고 있다.


봄가을에 바지런히 움직이던 아이들도 날이 추워지면 하나둘 자취를 감춘다. 겨울에는 시동이 갓 꺼진 차위에서나 따듯한 물이 담긴 그릇 언저리에서 한두 마리를 반짝 마주하기도 하는데 그나마라도 비가 오는 날에는 꼬리 하나 찾을 수 없다.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그래서일까. 빗방울이 토독이는 날이 오면 나는 커피를 마시느라, 나만의 분위기에 취하느라, 보이지 않는 그들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집 앞에 자주 밥을 먹으러 오는 그 축축한 고양이는 더 작고 축축한 것을 물고 나에게 몇 걸음 다가왔다가 금세 방향을 틀어 담장을 넘었다. 그건 새끼 고양이였다. 살아서 버둥거리는 작은 고양이. 자동차 아래라면 비를 피하려 들어간 것이었을 텐데 어째서 저리 쫄딱 젖었지, 허리를 푹 숙여 어둑한 곳을 들여다보니 물길이 지나가는 자리가 보였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오래도록 갇히고 싶은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세찬 비를 마주하는 순간마다 눈썹에 옅은 그늘이 지고야 만다. 설렘이 가득하다 좋아하던 겨울도 같은 이유로 그랬다. 이제는 온통 걱정뿐이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폭염이면 폭염이라서, 겨울이면 겨울이라서. 바깥세상의 약한 것들이 걱정되어 도무지 뭘 좋아할 수가 없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극심한 나는 그저 그들이 먹는 밥그릇 물그릇을 가져다가 구석에 낀 이끼 같은 것을 벅벅 닦아줄 뿐이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서, 조금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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