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불안하기에 불안하지 않아

by 지수연

한 여자의 인터뷰를 읽었다. 강원도에 거주하며 감성과 인문 공동체에 속해 살아간다는 그녀는 인터뷰 이쪽저쪽을 들여다 보아도 우리가 살며 흔히 만나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불안정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세상을 헤맨 용기가 특히나 그랬다. 힘겹게 쌓아둔 것들을 포기하고 낯선 곳의 이방인이 되는 일이 소설이나 영화처럼 단순한 계기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흔히 언급되는 이야기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전후 사정이 궁금했던 나는 빼곡한 이야기에 한참을 빠져들었고 끝내 한 대목에서 손 끝을 멈추었다.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건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의미 자체를 받아들이는걸 계속 연습해 나가고 싶어요.'


그녀에게 가장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는 공동체의 어린 친구는 그녀에게 '항상 불안하기 때문에 지금 불안하지 않다'는 말을 해주었다고 했다. 그 말이 신념처럼 남아 마음이 혼란할 때면 언제고 어린 친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했다. 시선이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공동체의 어린 친구를 끌어내어 손이라도 붙잡아볼 수 있었다면 밑도 끝도 없이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은 나 역시 그랬다. 완벽을 추구할수록 늘 인생이 무의미해지는 느낌이었다. 산다는 것은 불안과 불완전 그 자체. 그것을 인지하고 있지 않으면 '왜 나만'이라는 거머리 같은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매시간 깨진 바위 조각 같은 순간을 산다. 그 모든 갈라진 틈이 우리를 겁먹게 하지만 사실은 그저 그것이 삶인 것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갈라진 틈새를 걸을 뿐이다.


'늘 불안하기에 불안하지 않다'는 그 장난 같은 말이 왜 그리도 따스했는지 모르겠다. 불안, 나약, 불완전, 실패, 예상과 다른 결과, 제어할 수 없는 나 자신. 그것들을 버스 창 밖을 스쳐가는 나무처럼 여길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 고달픈 생각들은 내 청춘의 한 토막이었고 달이 뜨면 고개를 내미는 심연의 친구였다. 나는 그 문장을 다이어리에 옮겨 적었다. 어쩌면 내가 읽은 인터뷰의 그녀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던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모두 끌어안은 인생. 그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어떤 의미를 떠나 그저 순간을 살고 싶은 마음.


깨진 바위를 딛고 손을 잡아준 그녀의 인터뷰는 그 어떤 뻔한 말보다 진한 위로가 되어 아주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어쩌면 그 날 것의 마음은 모두의 가슴 한구석에 움튼 갈망이며 소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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