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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Jul 10. 2020

텅 빈 집의 오류

주인이 밤 11시에 도착한다는 것을 아는 개는 10시 언저리부터 문간을 기웃거렸습니다. 한결같이 오랜 시간을 그랬어요. 현관에 앉아 주인을 기다리는 개와 낑낑 소리를 들으며 부리나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던 주인의 모습. 모든 것이 익숙한 일상이었습니다. 


상실의 슬픔이 가장 적나라하게 와 닿는 순간이 언제일까요. 

나는 당연한 사소함의 부재를 체감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보이던 것을 볼 수 없고 만질 수 있던 것을 만질 수 없을 때. 그 마음은 도무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지요. 


퇴근 후 집으로 들어가던 매일 밤 11시. 나는 오랫동안 그 시간이 힘겨웠습니다. 집으로 걸어가는 골목길부터 조금씩 호흡이 가빠지곤 했어요. 정적이 흐르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을 때, 샤워를 하고 나와 벗어놓은 옷가지 위에 아무것도 없음을 볼 때, 밤늦도록 휴대폰을 들여다 보아도 얼른 자자 보채는 목소리가 없을 때, 잠결에 문득 만져지는 보드라운 것이 나의 개인듯하여 자세를 고쳐 눕다가 '아아, 아니지 참.' 눈을 뜨게 될 때. 고요하고 까만 천장이 눈에 들어올 때. 확 달아난 잠을 다시 붙들지 못할 때. 그런 순간에는 정말이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오래 함께 하던 장소. '집'이 참으로 싫어지던 시기였어요. 


「텅 비었다.」

늘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상자 안에 아이와 내가 함께 살았는데, 상자가 터지면서 아이가 떨어지고 우리가 함께 쌓은 추억도 전부 떨어지고 나만 혼자 상자의 귀퉁이를 붙든 채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것 같았어요. 모든 것이 사라져 텅 빈 집. 텅 빈 마음. 그것이 다시 채워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완벽하게 메워지지 않았고요. 사실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일 것만 같아, 나는 이것을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습니다. 



텅 빈 집.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오류를 찾아내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의 삶을 산 이들은 기도가 쌓인 터를 안다고 합니다. 오랜 기도가 쌓인 터에 가면 해가 들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마음의 위로가 스며든다고요. 그런 곳은 여러 기도자를 거쳐 특별한 공간으로 남는다고 했습니다. 공간에 스며드는 기운. 바로 그런 것이겠지요.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거룩한 터와 같은 것은 알 길이 없으나 다행히도 나와 내가 사랑했던 생명들이 쌓은 사랑의 터는 알 수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씻고 침대에 누우면 아이가 늘 옆구리를 비집고 들어왔어요. 그러면 나는 아이의 핑크색 배와 털이 북실한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며 말했지요.

「너,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니?」

한 오천 번쯤 묻지 않았나 싶어요. 목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아이들도 무어라 무어라 오천 번쯤 대답했겠지요. 나의 수많은 질문과 아이의 수많은 대답이, 매 순간의 진동이 모든 곳에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오래된 형광등과 부스럭거리는 차렵이불과 나의 눈동자, 아이의 쫑긋한 귀와 까만 코, 우리의 마음. 모든 곳에요.


한결같은 것이 사라진 적막. 상실이 가장 가까이에 와 닿는 그 시간에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텅 빈 듯 보여도 당신을 감싸고 있는 온기를, 

오래 쌓인 애정을,

당신이 그저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아이의 한결같은 마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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