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수연 Apr 30. 2016

진심에게 묻다

마음아, 이리 와서 좀 앉아봐 

얼마 전 책에서 읽은 한 문장이, 며칠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네 마음속 진심에 귀를 기울여라.


태생적으로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인 나는 그에 따르는 취약점들이 참 불만스러웠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좌지우지되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내 감정의 변화를 인지하게 되는 일은 보이지 않는 묵직한 짐을 얹고 오르막을 걷는 일처럼 힘겨웠다. 알리고 싶지 않은 내적인 것들을 드러내야만 하는 나도 불편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타인의 감정 때문에 아무 잘못 없이 눈치를 봐야 하는 주변인들은 더 불편해지는 악순환. 나는 그 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그 때문이었다. 그 시절 나의 동경은 적당한 냉소와 자신감, 감정의 분리 같은 것들에서 벗어날 줄을 몰랐다. 


지난날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뒤늦게 들여다보니 스스로의 모습이 낯설 만큼 달랐다. 아마도 동경하던 이들을 닮기 위한 연습을 내 삶 구석구석 반복한 탓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꼭 '이 또한 지나가리라'같은 것들이었다. 마음이 땅 속까지 가라앉아 시궁창에 콕 처박히고 싶을 때에는 아름답고 행복한 영화를 봤고, 너무너무 신나는 일이 생겨서 어딘가에 자랑을 펼쳐놓고 싶을 때에는 잠을 잤다. 기분이 좋지 않아도 인사를 할 때는 웃었고, 전화를 받을 때는 '여보세요'대신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혼자 울고 함께 웃는 연습. 나의 일이지만 마치 남의 일인 듯 떨어져 생각하는 연습. 그 결과 지금 나는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과 냉소적인 사람의 중간 어디 즈음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연습'이라는 것은 내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배제하고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나에게 주입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하루하루를 살아낼수록 내 감정에 대한 분별력이 조금씩 흐릿해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사랑이구나 했다가 금세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파해야 하는 시간에는 별 느낌도 없는 것이 꼭 마취주사를 맞고 오분쯤 지난 환자가 된 것도 같기도 하다. 시간과 경험이 쌓일수록 이별이 무덤덤해지며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는 수많은 어른들의 이야기도 혹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걸까.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되었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내 감정들을 잡초처럼 저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가끔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서 가슴이 얹힌 듯 갑갑해지는 날에는 마음아 이리 와서 좀 앉아봐, 도대체 지금까지 무슨 얘기들이 하고 싶었니, 하고 물어보고 싶은 심경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빨 받는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