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전민감증은 조금 유별나다. 외출 시 창문과 가스 밸브를 체크하는 것은 기본. 번지점프나 스카이워크 따위는 바라만 봐도 발등에 핏대가 선다. 용감한 나의 친구는 말했다. '위험하다는 건 알지만 뉴스에나 나오는 사건들이 과연 나에게도 일어날까 싶어서 말이야. 안일할지 몰라도 그렇게 여기면 딱히 무서울 건 없거든.' 나는 감탄했다. 저 대담함을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나는 12개월 할부로라도 그것을 사고야 말 것이다. 내 생각은 도무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질 않는다. 전적이 없는 일일지언정 그 최초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안전민감증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을 하자면 구구절절 끝도 없는 이야기가 등장하여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이들이 넌더리를 내게 만들 수도 있다.
2014년 언저리, 겨울 초입의 일이었다.
밤 12시. 막차를 놓쳤다. 늦은 퇴근 후 지인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까마득 시간이 흘러있었다. 허둥지둥 지인과 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잡아 탔지만 환승지인 종로의 정류장은 텅 비었다. 근무지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대략 한 시간 이십 분. 그 중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데 날은 춥고 택시도 잡히질 않고 술 취한 몇몇 이들 이외에는 사람도 없다. 어플로 택시를 부르는 시스템이 도입되기 이전이었고 택시의 승차 거부가 흔해빠진 시절이었다. 어쩌지 어쩌지 하며 큰길에 서서 지나가는 택시들을 처량하게 바라보던 그때였다. 웬 오토바이 하나가 앞에 와 끼익 서서 어디를 가느냐 물었다. 나는 연신내에 간다 대답했다. 그가 말했다. 저도 그쪽 방향으로 갑니다. 타세요. 태워다 드릴게요. 지금 택시 안 잡히잖아요.
맞아. 택시도 안 잡히고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그냥 탈까. 아아 좀 찜찜한데. 낯선 사람 믿으면 안 되는데. 근데 차가 없잖아. 집에 어떻게 갈거야.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냥 신세 좀 질까. 잠시의 고민 끝에 나는 대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 그가 다시 말했다. 아니, 그냥 타고 가세요. 근처까지만 태워다 드릴게요. 몇 번의 거절과 몇 번의 권유가 오갔다. 반복되는 상황에 이상한 낌새를 느낀 나는 조금씩 뒷걸음을 쳤다. 그러자 그가 팔을 뻗었다. 장갑을 낀 검은손이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리곤 오토바이가 조금씩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완전히 패닉이었다. 오토바이는 움직이는데 나는 손목을 붙들린 채 인도 위에 서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이대로라면 나는 곧 아스팔트 바닥에 나뒹굴 것이 분명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속도를 내기 직전에 나를 내던지듯 놓았다. 그리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저 겁을 주려 했던걸까.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종로 거리에 주저앉았다. 차를 가진 동네 친구가 없어 길거리 구석에서 흑흑 울다가 동창회에서 만난 지인 하나가 기억나 전화를 걸었다. 직업상 이동이 많아 회사차를 끌고 다니던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종로까지 달려 나왔다. 그의 도움으로 나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고 혼이 빠진 채 기절하듯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니 전날 밤의 일이 현실이었나, 꿈이었나 머리가 몽롱했다. 전날 차를 태워준 친구의 문자 메세지를 보고서야 번뜩 정신이 들었다.
지금도 나는 그 거리를 지나며 출퇴근을 한다. 종종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은 무겁지만 두렵지는 않다. 두렵다기보다는 뭐랄까, 이해가 되질 않는다. 당시의 기억은 생생하다. 낯선 남자의 인상착의는 흐릿하지만 그 순간의 내 마음은 또렷하게 떠오른다. 오토바이를 탈까 잠시나마 생각했던 나. 그 앞에 서서 우물쭈물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위험한 곳이라면 근처에도 가지 않는 내가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고야 말았을까.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어떻게 저런 걸 믿을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해가 가질 않아. 내 말에 엄마는 종종 말했다. 입바른 소리 하지 마라. 그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러면 나는 입을 한껏 삐쭉이며 대꾸했다. 내가 무슨 바본 줄 알아. 나는 안 그래.
집에 갈 방도가 없는 새벽, 추운 날씨에 오갈 곳 없던 안전민감증의 어느 여인은 낯선 남자의 오토바이라는 미끼를 반쯤 물고야 말았다. 물론 안정적인 상황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말을 걸자마자 자리를 옮기거나 가까운 카페로 휑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예쁜 버섯을 받아 든 굶주린 아이였다. 독이 있을지 모르지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봐. 내 손에 독버섯 따위가 들려있을 리 없잖아. 그런 건 뉴스에서나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코너에 몰린 인간의 판단력이란 도무지 믿을 것이 못 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안전민감증 보유자로 살아가지만 입바른 소리는 조금 줄었다.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상황에서 해보는 시뮬레이션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은 시뮬레이션과 다르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일어났을 때, 입바른 소리를 척척하던 나 같은 사람들은 소름 끼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쁜 버섯은 세상 곳곳에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한 채 혼란한 이들의 손목을 낚아챈다. 세상은 발전했지만 독버섯을 걷어찰 사람은 여전히 자기 자신뿐이며 그것을 가차없이 걷어찰 수 있는지는 결국 코너에 몰려봐야 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