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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08. 2022

젠틀맨

다시 초심으로 돌아간 가이 리치

<젠틀맨>(2020)은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8) 이후 가이 리치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알라딘>(2019) 같은 정체불명의 디즈니 실사영화를 보면서 이 인간이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고 슬퍼만 했다. 다시는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될 줄 몰랐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대개는 인생의 곡선이 꺾이고, 그렇게 쭉 늙어가니까.  하지만 <젠틀맨>은 와우, 반갑습니다. 가이 리치 감독님. 환영해요. 멋져요.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콜린 파렐이 손가락 4개를 펼치고 흔드는 이유를 알 것이다. (그리고 폭소를 터트릴 것이다) 이렇게 콜린 파렐은 자신의 멋짐을 지우고, 영화 속 캐릭터로 완벽하게 들어왔다. 스스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즐거워했을 것이다. 감독도 그랬을 것이고, 나도 그렇다. (매튜 맥커너히도 나오고, 휴 그랜트도 나오지만, 콜린 파렐은 자기가 등장하는 모든 씬을 스틸했다.)


조금만 찾아봐도, 좋은 영화는 너무 많다. 너무, 너무, 너무! 많아서 다 볼 수가 없고, 그래서 지친다. 아니, 마루야마 겐지의 말처럼, '눈은 점점 높아지는데 손은 점점 둔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좋은 영화가 보기 싫고,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내 손은 더 보기 싫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를 멀리하게 된다. 아마 옛날이었으면, 슬리퍼를 끌고 비디오 가게에 가서, 어디 액션 코너 구석에서 집어 들었을 만한 영화다. 가이 리치를 잊고 있었는데, 아직도 자기 식대로 영화를 만들고 있네. 그래서 더 반갑다.


그 옛날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심야 상영으로 봤던 때가 생각난다. 밤새 <매트릭스>와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과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를 묶어서 상영하던 무슨 특별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스카라 극장에서 밤새 영화를 본 뒤, 지하철 2호선을 두 번 순환하며 잠을 보충하고, 다시 피카디리에서 조조로 <미이라 1>를 봤다. (심지어 <미이라 1> 상영을 기다리다가 옛 연인과 마주치기도 했다) 1박 2일 동안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같이 죽여주는 영화였다. 


그때 나는 참, 운도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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