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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Nov 26. 2023

서울의 봄

가슴이 뜨거워지는 김성수의 두 번째 영화

1997년 5월 5일, <비트>를 봤다. 여자친구의 손을 잡고. 


그 시절 우리 동네는 야생이나 마찬가지였다. 무림과 다름없었다. 거리마다 무서운 형아들이 북적거렸다. 그날 극장에서도 그랬다. 일군의 형아들은 영화를 보다가 흥분했다. 어느 순간부터 화면과 대화를 시도하더니, 영화 내내 감탄사와 욕설을 내뱉었다. 아마도 영화를 보다가 가슴이 뜨거워졌나 보다. 


정우성, 유오성, 고소영, 임창정은 마성의 힘으로 우리를 끌어당겼다.

사실 뜨거워진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싸움 같은 건 전혀 할 줄 몰랐지만, 극장에서 떠드는 저 형아들에게 욕이라도 내뱉고 싶었다. 내 옆의 친구는 그런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영화는 끝났다. 밖에서 결국 시비가 붙었다. 호르몬이 가득한 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로 북적였다.


봄바람 부는 저녁, 친구와의 만남 그리고 <비트>의 강렬함. 그날 집에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기억나는 건, 흥분한 관객들, 웅장한 마음 같은 것들이었다. 더불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서울의 봄>을 봤을 때, <비트>가 생각났다. 익히 알고 있는 역사물을 보는 건, 게다가 참혹한 결과를 다시 보는 건 내키지 않는다. <서울의 봄>은 저절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영화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이 뛰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다른 모든 게 시시해졌다. 김성수 감독은 26년 만에 <비트>만큼, 아니 <비트>보다 더 뜨거운 영화를 만들었다.

 

<서울의 봄>에 나오는 정우성은 <비트>의 중년 버전이다. 

<비트>와 <서울의 봄> 사이에 우리나라는 얼마나 변했을까?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었고, 디지털과 인터넷 시대가 되었다. 몇 번의 민주주의 대통령이 등장했다. 무척 많이 변한 듯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의 변하지 않았다. 똑같은 악당들이 똑같은 악당들로 대체되었고, 사람들은 늘 절망에 빠진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아니, 나는 그때의 웅장한 가슴을 가지고 무엇을 실천했을까? 아니. 없다. 부끄럽다. 똑같다. 세상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어쩌면, 정의로운 사람들은 그 옛날에 다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때 의병들, 동학혁명 때 민초들, 일제강점기 때, 한국전쟁 때 우리의 의로운 선조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그리고 비겁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아 자손을 남겼나 보다. 그렇게 내가, 우리가 태어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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