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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08. 2022

페이백

존 윅 이전에 포터가 있었지.

케이블 TV에서 <페이백>(브라이언 헬겔랜드, 1999)을 봤다. 이 영화는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다. 단지 7만 달러를 되찾기 위해 마피아 조직 하나를 작살내는 포터(멜 깁슨 역)의 이야기다. 



설정은 매우 헐겁기도 하다. 아무리 포터가 싸움을 잘한다 하더라도, 조직을 날리는 건 어렵다. 그쪽도 집단 지성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 윅이 그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다) 그런 어설픈 설정을 눈 감는다면, 매우 시원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무척이나 마초맨으로 등장하는 멜 깁슨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한창때의 멜 깁슨은 그 자체로 이미 마초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건 필름 누아르가 제시하는 기본적인 남성상이다.)


다른 건 몰라도, 단돈 7만 달러 때문에 조직과 싸운다는 설정은 심플하면서도 그럴듯했다. 액수가 너무 적어서, 죽는 애들 족족 "겨우 7만 달러 때문에?"라면서 그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한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방식 혹은 신념의 문제다. 마치 존 윅이 "개 때문에" 조직과 싸우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내 방식대로 그냥 살고 싶은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아무리 이상하게 보인다 해도.


오랜만에 <페이백>을 봤더니 즐거웠다. 나는 이런 서늘한 영화를 좋아한다. 늘 <페이백>과 <포인트 블랭크>(존 부어맨, 1967) 혹은 <겟 카터>(마이크 호지스, 1971)가 헷갈리긴 하지만. 그냥 설명 대신 깔끔하게 행동으로 보여주기 바라는 것이다. (헷갈린다고는 하지만, 나는 <겟 카터>를 정말, 정말, 정말 좋아한다.)


처음 영화에 관심을 가졌을 무렵,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했다. 수많은 영화와 감독들이 발에 걸리는 황금처럼 줄줄이 솟아났고, 나는 그런 영화 밭에서 황홀한 마음으로 어쩔 줄 몰라했다. <페이백> 같은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시절의 기분이 되살아 난다. 그래서 잠시 행복해진다. 


어제는 보충 촬영을 했는데, 역시나 어려웠지만, 또 즐거웠다. 문제는 그렇게 촬영을 해도 어디다 붙일 수 있을지 잘 모르는 점에 있다. 또는 이 영화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하는가의 문제도 있다. 원래 간단히 시작한 프로젝트니까, 얼추 끝나면 빨리 정리해야 하는 게 프로덕션 개념상 맞지 않나? 왜 이렇게 오래 끌고 있지? 뭐 그런 생각들이다. 역시나 <페이백>을 본 직후라, 말도 많아진다. 


심심해서 연출자인 브라이언 헬겔랜드에 대해서도 검색을 해 봤다. 


오, <나이트메어 4>(1989)의 각본으로 시작했다. 이 영화는 레니 할린의 영화로도 (나중에) 유명해졌지만, 나 역시 재미있게 본 영화다. 개인적으로 <나이트메어> 시리즈는 3편과 4편이 좋다. 오히려 내 경우에는 3편인지 4편인지를 먼저 보고 다시 시리즈의 처음으로 돌아간 경우다. 

그 밖에 <어쌔신>(리처드 도너, 1995), <포스트맨>(케빈 코스트너, 1998), <LA 컨피덴셜>(커티스 핸슨, 1998), <컨스피러시>(리처드 도너, 1997), <미스틱 리버>(클린트 이스트우드, 2003)(각색), <맨 온 파이어>(토니 스콧, 2004), <펠햄 123>(토니 스콧, 2009), <그린존>(폴 그린그래스, 2010), <로빈 후드>(리들리 스콧, 2010)<레전드>, <스펜서 컨피덴셜>(피터 버그, 2020) 등의 각본을 맡았다. 


리처드 도너라든지, 폴 그린그래스, 토니 스콧 등 액션 영화감독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리들리 스콧과도 작업을 했네. (리들리 스콧과 토니 스콧은 형제니까, 형제의 영화 시나리오를 써준 셈이다.) 한편으로는 케빈 코스트너의 몰락이었던 <포스트 맨>의 시나리오를 쓴 것도 인상적이긴 하다. <페이백>의 주인공인 멜 깁슨과는 <컨스피러시>에서 이미 만난 사이였고. 나는 <페이백>이 <스펜서 컨피덴셜>과 은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톤은 다르지만, 내러티브의 진행 스타일은 비슷하다. 말해 놓고 보니, 당연한 거다. 같은 사람이 썼는데. 


본인은 띄엄띄엄 연출을 했는데, 히스 레저가 출연했고, 퀸의 'We will rock you'가 쓰였던 <기사 윌리엄>(2001)이라든지, <레전드>(2015) 등의 영화를 연출했다. 이 정도면 할리우드에서 중간은 가는 각본가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만 살 수 있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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