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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예수의 수난극 같았다

by 솔라리스의 바다

<하얼빈>(우민호, 2024)의 연출자는 안중근을 영웅보다는 순교자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을 믿고 사랑하는 이로 등장하는 안중근은 일본군 장교를 놓아주고 배신자를 용서한다. 하지만 후과는 대단했다. 동료들이 살해당하고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 당시에는 이등박문이라 불렀다)을 죽이려는 시도는 실패할 위기에 빠진다.

e4012221ca966ead21f4c7300e242d4755aaf238 부대를 잃은 안중근은 얼어붙은 강을 건너다 죽으려 한다.

안중근은 고뇌한다. 마치 유다의 배신을 알게 된 예수처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할 운명과 맞닥뜨린 예수처럼 말이다. 감독은 극명한 콘트라스트로 빛과 어둠을 가르고 안중근을 어둠 속에 몰아넣었다. 잡았다가 석방한 일본군 장교 때문에 부대가 몰살당하고 독립의군 본거지로 돌아와 동료들의 비난을 당하는 장면 또한 종교재판에 회부된 순교자처럼 보인다.

3dbd860ddad70d0f1dce8b964f75087c0d8c5a15 안중근을 비난하는 독립군 동지들. 마치 종교재판처럼 보인다.

그 결과, <하얼빈>은 스펙터클도 아니고 영웅주의도 아닌, 매우 어둡고 딱딱한 종교극이 되었다. 우리가 단지동맹과 이등박문 저격으로만 기억하는 안중근이 사실은 인간을 사랑하고 동료의 배신에 가슴 아파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여기에 영웅은 없다. 자신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의심하면서도 한 가닥 희망과 사랑을 좇는 이상주의자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매우 색다른 위인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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