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키 17

<기생충>의 반대말, 판타지 무비

by 솔라리스의 바다

<미키 17>은 비정규직 또는 소모품으로 전락한 하층 노동자의 이야기다.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SF적인 설정을 가졌지만, 현실에서는 잘리고 취직하고 잘리고 취직하거나 아니면 자르고 다른 사람 쓰고 자르고 다른 사람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현실, 우리나라에서는 IMF 구제금융시기 이후의 임시직, 파견직 노동시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0b6af0058ef3a7ba7106c47d426b9d3f55fc6876 로버트 패티슨은 잘생김을 버린 대신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의 여덟 번째 영화 <미키 17>에서 17번째 되살아난 미키는 기어이 또 다른 미키 18, 미키 19가 되는 대신 미키 반스라는 이름의 어엿한 시민이자 노동자가 된다. 세상에, 대성공이다. 꿈만 같은 일이다. 이건 마치 <기생충>의 다른 결말처럼 보인다. <기생충>의 기택 가족은 그렇게 원했지만 평범한 직장인마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계층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된다. 하지만 <미키 17>는 그렇지 않다. 미키는 마침내 "익스펜더블(소모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판타지영화라고 생각한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누가 진심으로 도와주지도 않는다. (아니, 못한다. 자기 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는 <다음 소희>(정주리, 2023)의 소희가 되거나 <더 문>(던칸 존스, 2009)의 샘처럼 소모되고 교체된다. 더 심하면 <기생충>의 기택이나 기우처럼 뉴스에 날 뿐이고.

197140114A8112934A <미키 17>은 <더 문>과 굉장히 닮았다.

이래도 판타지가 아니라고? 다만 바람은 있을 뿐이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과 다른 결말을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에서 이제는 <기생충>보다는 <미키 17> 같은 결말이 자주 일어나길. 그런 바람으로 만들었나 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