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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08. 2022

에이리언 마스터

외롭다고 해서, 함부로 마음을 합칠 수는 없지

<에이리언 마스터>(스튜어트 옴, 1994)는 새로울 게 없는 에일리언 영화들 중 하나다.  


어느 날, 지구로 외계 우주선이 날아오고, 그 뒤에 사람들이 이상해진다. 주인공들이 조사를 시작하면, 실체가 조금 드러난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홍어를 닮은 외계인이 인간의 등에 붙어서 촉수를 뇌에 꽂아 인간을 조종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좀 더 조사를 하면, 홍어를 닮은 외계인은 뇌가 신체의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소굴에 모여서 정보를 공유함으로 하나이자 개체는 여럿인 공동체적 에일리언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리하여 에일리언 퇴치를 위해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주인공들 중에 일부가 에일리언의 숙주로 사로 잡혔다가 풀려나고, 위험을 무릎 쓴 도전 끝에 에일리언 퇴치를 위한 비법을 발견하고 약간의 반전과 해피 엔딩이 뒤따른다.                    

이 영화가 다른 에일리언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정보를 공유하는 에일리언이라는 점일 것이다. 주인공 샘은 아버지와 함께 에일리언 소탕 작업을 한다. 늘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와 자라 온 샘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외로움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런 샘에게 에일리언이 달라붙는다. 에일리언이 붙은 샘이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데, 외계인의 입을 빌려 본심을 드러난다. 평소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가 원망스러웠고, 외로웠던 샘. 에일리언은 말한다. 우리와 함께 한다면, 외로움을 없앨 수 있다고. 그리고, 에일리언은 우리는 하나라는 말을 한다. 실제로 에일리언의 숙주가 된 인간들은 아까도 말했듯이 정기적으로 ‘소굴’로 가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한다. 각각 인간들의 느낌과 감정과 기억까지 모두가 공유한다. 아마도 그들이 말한 ‘외로움을 없애고,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이런 집단적인 감정의 공유를 통해서 얻게 되는 부산물일 것이다.                     


여기까지 보고 나니, <패컬티>(로버트 로드리게즈, 1998)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그 영화는 학교로 숨어 들어온 에일리언이 교사들을 감염시키고 그들을 통해 학생들을 조종하는 이야기로,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이중의 은유로 결합시킨 청춘 에일리언 영화였다. 영화를 보면, 여왕개미쯤 되는 에일리언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적응 못하는 전학생들이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서 너희에게 (에일리언이라는) 선물을 준 것이라고. 에일리언의 숙주가 됨으로써 일체감을 맛보고, 외롭지 않은 전체주의를 경험할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아, 나는 사실 귀가 솔깃했다. 서로가 공유한다면, 외롭지 않을 거라는 저 방식의 이야기.                     


인간은 외롭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인기가 엄청 많은 연예인조차도 혼자 있는 밤에 외로움이 밀려온다고 말하는 걸 보면, 유전자 코드에 외로움이라는 항목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사람 끊이지 않는 인기인들도 그럴진대, 하물며 소외된 사람들은 더더욱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하지만, 아무리 외롭다 한들 에일리언에게 몸을 내주고 집단적으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함으로 외로움을 해소하는 건 왠지 못마땅하다. 이건 사이비교와 비슷하다. 온몸을 바치고, 재산을 다 주고, 집단으로 합숙하면서 일체화된 교리를 받드는 것. 거기에 개성이라는 건 없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 개개인의 특성을 포기하고, 공장의 로봇처럼 균일한 감정상태만 유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에이리언 마스터>의 에일리언을 보면서 그들의 집단화에 무서움과 더불어 유혹도 느꼈다. 사람들은 틈이 생기면, 집단화해서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위에서 나를 보호하려는 경향. 그런 치명적 약점을 에일리언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외롭다고 다른 사람과 합체를 할 생각은 없다. 외로움은 나눈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차라리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게 낫다. 요즘 세상-스마트 폰과 SNS로 점철된 세상-에서는 오히려 외로울 시간이 없지 않은가?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했듯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 어쩌면, 이 영화의 에일리언들은 스마트 폰이나 온라인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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