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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n 08. 2022

행복

감독님께 묻고 싶은 영화의 결말

아녜스 바르다 감독님-나이가 나이인지라 '님'자를 붙여야 할 것 같다-이 91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다음 날, 그녀의 별세 소식도 모른 채, <행복>(1965)을 보았다.      


아, 이 영화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결국 감독님의 대답은 영원히 듣지 못하게 되었네. 물론 물어본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이 영화는 흔히 말하는 행복을 해석하는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감정에 관한 아주 서늘한 시선인 것 같다.     



주인공인 남편은 멋진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바람을 피운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저 새로운 여인에게 매력을 느꼈을 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남편은 아내와 애인 모두를 사랑하려 한다. 그리하여 아내에게 이러한 소식을 전한다. ‘애인이 생겼고, 나는 애인과 똑같이 당신도 사랑한다’고. 일견 남편의 말에 수긍하는 듯했던 아내는 바로 자살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다. 영화는 이렇게 끝나는 듯했다. 비극으로. 쓸쓸함으로. 허망함으로. 하지만 영화의 엔딩은 괴이하다.     


아내가 그렇게 죽었는데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연인과 행복하게 지낸다. 심지어 아이들조차 새엄마를 따르는 것 같다. 분명 잘못된 만남이었을 텐데, 오히려 멋진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를 아녜스 바르다가 연출했다는 점이, 그래서 신기했다. 감독님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내가 분명히 맞는 것 같은데, 나와 다른 뜻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뭉쳐서 틀린 주장을 펼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순간에는 도저히 해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 죽은 아내의 심정이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분명 저들의 잘못인데, 너무 억울한데 말이다. 나만 빼고 세상이 다른 방향으로 도는 것 같으리라. 무섭기 그지없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였을 수도 있다. 그러면 누군가는 <행복>의 아내처럼, 죽을 만큼 슬펐을지도 모른다.     


누가 옳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서로 물고 물리는 게 인생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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