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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l 03. 2022

기묘한 이야기 시즌4

다른 관점에서, 판타지한 이야기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시즌 4가 업로드되었다. 지난번, 파트 1에 이어서 파트 2까지 나온 셈이다. 사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는 시즌1의 무한 변주다. (어떤 시리즈든 그렇겠지만) 그러나 한 번 시청한 사람은 후속 편을 어떻게든 보고야 만다.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프랜차이즈 전략이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이야기가 방대해지고, 그만큼 인물이 늘어나고, 러닝타임도 길어진다. 언젠가부터-처음부터 그랬나?-주요 등장인물들은 시즌 내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각각 유닛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엄마팀, 아이들 팀 그리고 엘, 이런 식으로.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적과 싸운다. 지금 만날 순 없지만, 그리고 연락도 할 수 없지만, 멀리 떨어진 친구와 가족을 떠올리면서, '내가 지금 이들과 맞서지 않으면, 나의 소중한 친구(가족)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야'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남을 위해, 싸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들 유닛의 싸움을 모두 볼 수 있다. (평행 편집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각각의 싸움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도 안다. (일종의 서스펜스라고 생각한다. 인물은 모르는 사실을 관객은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관객들은 인물 각자의 싸움을 응원한다. 

결국 그런 싸움의 조각, 승리의 조각, 노력의 조각들이 모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긴 시리즈가 나왔다) 만약, 단 한 명이라도 포기했다면, 그들의 작은 행위가 없었다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각각의 행동은 마치 연쇄반응처럼 인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만약, 조각 하나만 사라졌어도 모든 게 허물어졌을 것이다. (관객만이 전지적 시점에서 알 수 있다.)


이런 이야기 구조와 가장 닮아 있는 것이 <반지의 제왕>(피터 잭슨, 2001) 시리즈다. 프로도와 샘이 절대반지를 없앨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러나 아라곤 팀과 간달프 팀과 각각의 팀들이 뿔뿔이 흩어진 채로, 서로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다. 그런 행동이 결과적으로 최종 승리를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시리즈의 마지막에 프로도가 간신히 운명의 산에 도착했을 때, 그는 거의 죽을 지경이다. 게다가 사우론은 운명의 산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라곤은 프로도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기 위해, (사실은 프로도가 그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소수의 인원으로 사우론의 군대와 맞서고, 이 때문에 사우론이 잠시 아라곤에게 눈길을 주는 순간, 프로도는 겨우 운명의 산 안으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반지의 제왕>은 이런 식으로 모든 일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결국 모두가 분투한 승리였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 말로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드래곤이 나오고 엘프가 나와서 판타지가 아니다. 전혀 알 수 없는 미래를 그리며, 지금 내 자리에서 목숨을 바쳐 싸울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런 소수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슬플 뿐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세울 수 있다면, 사회의 부조리 같은 것들을 개혁할 수 있다고, 그 옛날 『88만 원 세대』에서 우석훈 박사는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무한 경쟁시대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서로를 못 믿기 때문이다.)


<기묘한 시리즈> 같은 드라마에서, <반지의 제왕> 같은 영화에서 인물들이 싸울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사랑과 우정 때문이다. 믿음이 사라진 시대에 이런 일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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