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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l 05. 2022

헤어질 결심

잘못하면 내 영화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될지도

(스포 없음)


<올드보이>(2003) 이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충격을 받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 사이의 박찬욱 영화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전적으로 내 사정이었다. 


힘 없이 허우적거리는 내 단편영화를 편집하다가, 새벽에 동대문 MMC에서 본 <올드보이>는 시작부터 충격적이었다. (동대문시장의 극장답게 1회가 새벽 1시에 시작했다) 이렇게 박력 있는 오프닝 시퀀스라니. 다시 편집실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지난봄에 촬영한 영화를 편집하다가, 이어서 여름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용도 비슷하고, 설정도 비슷해서, (운 좋으면) 겨울에 촬영할 영화까지, 3편을 묶어서 뭔가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나 밍숭밍숭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때에,


<헤어질 결심>(박찬욱, 2022)을 봤다. 


영화를 보고 났더니, 다 시시해졌다. 내 영화, 내 시나리오, 다른 영화, 다른 시나리오들. 나는 <올드 보이> 이후, 20년 동안 나아진 게 없는데, 박찬욱 감독은 자기의 세계를 열고 닫고, 세계를 통과해서 마음대로 연출하는 경지에 들어섰나 보다. 질투가 났는데, 질투를 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홍상수 같기도 하고, 김기덕 같기도 했지만, 결국은 박찬욱 스타일이었다. 편집은 찰떡같았고, 음악 선곡은 여전했다. 그리고 배우의 연기도. 박해일도 박해일이지만, 역시 탕웨이였다. 오히려 <색, 계>(리안, 2007) 때보다 더 아름다웠다. 누가 탕웨이의 미소와 눈빛을 뿌리칠 수 있을까? 난 이미 항복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짜릿했다. 별 것 아닌 이야기를 오로지 연출력으로 커버했다. (사실 내러티브는 약간 이상했다) 가히 '깐느의 감독상' 다웠달까? 


휴우.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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