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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ul 20. 2022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쿠바라는, 또 하나의 판타지가 만들어지는 순간

쿠바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 본 적 없다. 


피델 카스트로의 사회주의 국가. 체 게바라의 추억. 고급 시가. 휴양지 아바나. 올드 카. 관타나모 해군기지. 영화 <어퓨 굿 맨>. 아마 이 정도일 것이다. 반공교육을 충실하게 받은 옛 국민학교 출신들은 중국, 북한과 함께 사회주의 국가를 유지하는 쿠바에 대해서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대상에 대한 본질을 외면한다는 점에서 선입견을 갖는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의 감독 빔 벰더스. 그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감독인 라이 쿠더는 쿠바의 음악에 심취하여 쿠바의 오래된 뮤지션들을 찾아다닌다. 사실,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휴양지로서 최고의 기후조건을 가진 쿠바는 일찍이 미국과 유럽의 휴양지였다.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하기 전까지 쿠바에는 자연스럽게 미국 돈이 흘러 다녔고, 미국 음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거 우리나라의 미 8군 기지가 그랬듯이 말이다. 1950년대까지 쿠바 음악의 황금기를 열었던 사람들. 그들은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사라졌다. 


라이 쿠더가 다시 찾았을 때, 그들은 70대를 넘어 80대 이상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모여 음악을 연주했다. 그것이 바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인데, 이 앨범은 1990년대 후반,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 이러한 과정, 그리고 음악과 뮤지션에 대한 인터뷰와 공연 실황 등을 모아 발표한 것이 다큐멘터리〈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1999)이다. 감독은 빔 벤더스로 올라와 있지만 사실상 라이 쿠더의 영화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빔 벤더스는 라이 쿠더가 이 영화에 대해 말했을 때, 오랜 세월 함께 했던 라이 쿠더에 대한 의리와 예의로 다큐멘터리를 착수했다고 말했다.)


나는 쿠바 음악을 잘 모른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즐기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큐멘터리를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영화를 보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우리가 가보지 못했던 쿠바의 풍경들이다.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자본주의 국가 시민의 눈으로 본다면) 전체적으로 다운-그레이드 된 사회이지만, 해맑아 보이는 아이들과 주름 가득하지만 햇살 가득한 할아버지의 모습. 낡았지만 더럽다고는 할 수 없는 도시와 거리들. 가난해 보이지만 불행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우선 눈이 간다. 그리고 오랜 세월 음악을 하지 않았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떻게 다시 만나 이가 조금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흥겹게 음악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호기심. 우리가 들어보지 못했던 쿠바 음악의 리듬과 멜로디들. 그리고 가사는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본능적인가! 이런 것들이 느슨하게 조합되어 경쾌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더구나 그들이 뉴욕 카네기 홀에 섰을 때의 감동은 마치 우리나라 운동선수가 해외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을 때와 같다. 그 실력과는 상관없이 이기기를 바라고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이분들의 멋진 공연을, 그리고 공감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들의 기립박수. 멋지다. 음악으로서도 멋지고, 그들의 일생과 인생의 경로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어 가슴이 찡해진다. 이것이 극적 다큐멘터리 구성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아서 더 좋다. 쿠바 음악 스타일 그대로 그들의 인생. 어쩌면 버려진 음악가의 일생일 수도 있는데, 그런 인생을 담담히 보여주기에 더 좋다. 차가운 대관령 목장에서 혼자 살아가는 양 떼들 속의 외로운 양처럼, 긍정적인 고독이 느껴졌다. 


하지만 좀 싫은 점도 있다. 


쿠바의 뮤지션들이 하나같이 라이 쿠더에게 '우리를 찾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들이다. 라이 쿠더의 ‘발굴’은 의미가 있지만, 라이 쿠더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과 동시에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더구나 미국으로 초청된 쿠바 뮤지션들이 미국을 관광하면서 '이렇게 좋은 곳에 오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들을 계속하고 있다. (그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이건 마치 미국 선전용 영화가 아닌가? 


어쩌면 새로운 오리엔탈리즘일지도 모른다. 처음엔 아프리카를, 아시아를, 그리고 이번엔 쿠바를. 이렇게 판타지를 심는다. 그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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