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네마 천국, 나만의 아지트
광명시 개봉극장은 당시 기준으로는 재개봉관(속칭 2류 극장)이었다.
그때는 개봉관, 재개봉관, 재재개봉관 혹은 1류 극장, 2류 극장, 3류 극장(이런 분류는 좀 그렇긴 하다)이라 불렀다. 개봉관은 최신 영화 프로그램을 상영했으며, 정가를 받고 티켓이 제공되었다. 하지만 재개봉관의 경우, 영화 프로그램이 한 달 정도 늦게 개봉되었고, 가격도 조금 쌌으며, 좌석표 없이 아무 자리나 앉을 수 있었다. (원하면, 영화가 끝난 뒤 한 번 더 볼 수도 있었다) 재재개봉관도 있었는데, 이곳은 개봉한 지 한참 지난 영화를, 아주 싼 가격에, 두 편씩 보는 곳이었다. (3류 극장 혹은 동시상영관이라 했지.)
동시상영관은 그전에도 많이 가봤고(가리봉동에 많았다. 공단극장, 그리고 천일극장에 자주 갔다), 재개봉관도 몇 번 갔었다. (영등포에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개봉극장처럼 크고 쾌적한 재개봉관은 처음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600석 정도 됐다. 1층에 300석, 2층에 300석. 그래서 화면도 컸다.) 그냥 1류 극장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게다가 영화 프로그램도 좋았고.
개봉극장에 처음 간 건, 고등학교 때였다.
겨울 방학 어느 날, 집에 찾아온 친구들 손에 이끌려 버스를 타고 갔다. 그리고 <토털 리콜>(폴 버호벤, 1990)을 봤다. 후후, 그때부터 약 3년 동안, 열심히 다녔다. <사랑을 위하여>(조엘 슈마허, 1991) (*이런 멜로물을 조엘 슈마허가 만들다니!), <마지막 보이스카웃>(토니 스콧, 1991), <허드슨 호크>(마이클 레만, 1991) 그리고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홍콩 액션 영화들도.
보통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갔다. 버스정류장 앞에 동네빵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팥빙수를 포장해서 가곤 했다. (나중엔 두 개씩 포장했다. 저는 팥빙수 마니아거든요.)
기억나는 영화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엑소시스트 3>(윌리엄 피터 블레어, 1990)다. 지금도 그 추운 겨울, 이 영화를 보던 날을 기억한다. 정말 무서웠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식이 있던 날, 나는 홀로 극장을 찾았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고3으로 진입했고, 영화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었을 무렵, 객석에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1층에 몇 명, 2층에도 몇 명, 이런 식으로. 나는 그 극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 1층의 정중앙에 앉았다. 그리고 영화를 봤다. <엑소시스트 1>은 당연히 명작이고, 존 부어맨이 만든 <엑소시스트 2> 또한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줘도 <엑소시스트 3>은 흔한 할리우드식 속편에 가까웠다. 좀 더 말초적이고 잔인했을 뿐. 하지만 그때는 어렸고,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보는 내내 무서운 마음을 눌러야 했다. 그리고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극장 안으로 바람 한 줄기가 불었다.
나는 몸을 떨며, 스크린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 주변을 살폈다. '어디에서 바람이 들어오나?' 그런데 이상했다. 1층 양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했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에는 적어도 10명은 있었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려, 2층을 살폈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그 큰 극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오직 나만 홀로 있었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가장 무서운 장면이 보였다. 나는 너무 무서웠던 나머지, 극장의 어둠 속에서 악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상상에 빠졌다. (지금 같아서는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빨리 영화가 끝나기만 바랐다. 진심으로.
불이 켜지고 다시 극장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혼자서 영화를 본 것이다. 언제부터 혼자였는지 모르겠다. 아마 한 번 더 보려던 관객들이 중간에 빠져나갔지 싶다. 그래도 너무했다. 너무한 극장이었다. 너무한 영화였다. 하지만 진귀한 경험이었다. 지금 같은 멀티플렉스 체제에서는 관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영화를 상영하지만,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심지어 친구랑 두 명이었는데도, 전기세가 더 나간다고, 관람을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 허리우드 극장에서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광명시 개봉극장에 마지막으로 간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종강하던 날, 술 마시자는 동기들을 물리치고 혼자 극장을 찾았다. 빵집에서 팥빙수를 사서 영화를 보러 들어갔다.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영화가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기분이었고, 그 기분을 만끽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개봉극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여자 친구와 개봉극장에 올 수는 없었다. 소년 시절처럼 18금 영화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전전 전긍하지 않아도 됐고. 그렇게 개봉극장과 이별했다. 하지만 정말 고마운 극장이었다. 개봉극장에 가는 날은 즐거운 날이었다. 학창 시절의 일부였다. 때로는 혼자 간 적도 있다. 대개는 우울하거나 슬플 때였다.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극장에 가는 거였다. 어디 잠깐 쉴 곳이 필요했기 때문에.
옛날엔 그런 극장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