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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Aug 15. 2022

돈 룩 업

지독하게 단순하지만 치명적인 편 가르기

<돈 룩 업>(아담 맥케이, 2021)을 뒤늦게 봤다. 기차와 지하철에서 틈틈이 야금야금. 실소를 터트리며, 때론 소름 끼치도록 공포를 느끼며, 잘 봤습니다. 


이 영화에 관한 감상은 (이미) 매우 많을 터이니, 나는 영화 속의 편 가르기 전술에만 집중하고 싶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Don't look up'은, 미국 정부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혜성의 위험성을 숨기려 하자, 주인공들을 비롯한 여타의 사람들이 "하늘을 보자(하늘 위의 혜성을 보자)"라는 의미로 'Just look up' 캠페인을 벌이자, 정부와 대통령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반대편에서 "하늘을 보지 말자"라고 외치는 구호다. 


이 'Don't look up' 캠페인을 주도하는 대통령 올리언(메릴 스트립)은 매우, 매우, 매우 속물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재능이 있는데, 그건 '갈라 치기' 능력이다. 아주 간단하게 국민들을 분열시킨다. 그리고 자신의 반대편 사람들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챙긴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 전술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넘어온다.

상식적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현실에서도 굉장히 많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서 일어난 일, 영국의 EU 탈퇴, 그리고 우리나라... 솔직히 영화 속 미국 대통령 올리언은 (여자 대통령이지만 오히려)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보인다. 겉으로는 공정과 정의, 상식을 부르짖지만, 철저하게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그게 뻔히 보이는데도 사람들은 올리언을 (혹은 트럼프를) 지지한다. 


이러한 편 가르기는 기본적으로 혐오를 바탕으로 한다. 이제 누군가를 지지하는 행위는, 둘 다 좋지만 그래도 이쪽이 내 취향에 맞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동글동글한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지만-혹은 하나도 모르지만-저쪽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쪽을 지지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부분이다!) 미국의 트럼프가 그런 방식이었고, 우리나라의 사회적 이슈 또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이렇게 혐오와 편 가르기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왜일까?


쉽기 때문이다. 쉽고 간단하게 (분노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에서 오는 에너지 역시 강력한 에너지다. 그러면서도 선한 에너지보다 만들어내기도 쉽다. (사실 선한 에너지는 모으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과거의 종교에서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부정적인 에너지는 결국 고갈될 것이다. 바다에 표류한 사람이 갈증이 난다고 바닷물을 먹는 것처럼, 쓰면 쓸수록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사람이 누가 될지 모르는 채, 지금 당장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혐오를 조장하고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고 분노를 이끌어내는 일을 계속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설득하는 건 어렵지만, 이쪽 편과 저쪽 편을 나누는 건 매우 쉽다. 쉬운 게 좋은 거였다면 모두 다 그렇게 했겠지. 쉬운 건, 그리고 어려운 건 다 이유가 있다. (세상 모두가 그렇다.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있다면 속임수일 가능성이 크다.)


또, 한 가지. 


예전엔 종말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도 있었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종말의 바보>는 지구 종말을 3년 남겨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돈 룩 업>은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서 시작된다) 소설의 전사에서 이미 한 바탕 소동과 혼란이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은 자포자기 상태 혹은 차분한 마음으로 종말을 준비한다.

<종말의 바보>를 읽을 때는 엔딩이 3년쯤 남은 시대의 멸망감이 왠지 그럴듯해 보이기도 했다. 나른한 즐거움도 있었다. 그러나 <돈 룩 업>에서의 종말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무서웠다. 공포를 느꼈다. 정말 이런 순간이 닥칠 수도 있겠다는 핍진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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