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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Aug 19. 2022

헌트

적의 적은 우리 편일까?

<헌트>(이정재, 2022)가 깐느에 초대되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영화제는 종종 이름 값있는 배우의 연출작을 초청한다. 바로 그 이름값을 함께 누리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는 부산영화제가 그런 걸 잘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소문이 돌았다. 대단한 액션 영화라고. 배우들이 멋짐을 휘날린다고.


영화는 굉장히 좋았다. 액션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카터>가 무한 액션으로 오히려 지루함을 동반했다면, <헌트>는 필요한 액션만 알맞게 보여준다. 그렇다. 액션이든 뭐든, 서사와 어울려야 한다. 


그리고 멋있는 걸, 최대한 멋지게 촬영할 줄 알아야 한다. 


정우성 배우는, 그의 연기나 발성이 어떻든 간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김지운, 2008)에서 롱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장총을 쏘아댈 때, '아, 멋있는 건 이런 거구나' 확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주름이야 어쩔 수 없지만, 넓은 가슴과 어깨를 감싼 슈트가 지금의 정우성과 이정재를, 그 옛날 <태양은 없다>(김성수, 1998) 시절의 정우성, 이정재보다 멋있게 만들었다. 



총격씬도 마찬가지다. 거리 총격씬의 대표적인 영화는 <히트>(마이클 만, 1995)다. (생각해보면, 그 영화에서도 두 명의 멋진 남자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가 나왔다) 이 영화에서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 소총을 이용한 총격씬이다. (<놈놈놈>의 정우성도!) 군대가 아닌 이상 사회에서의 총격씬에서는 권총 사용이 일반적인데, <히트>에서는 소총을 이용하여, 총격씬의 스타일을 바꿔 버렸다. 그리고 <헌트>도 마찬가지다. 정우성과 이정재의 소총 사격 자세는 간지를 부른다. 그렇다. 군인들의 일률적인 소총 거치 말고, 일반인이 소총을 드는 모습은 매우 스타일리시하다. (어쩌면 정우성, 이정재라 그럴 수도 있고.)


(스포 있음)


영화는 대통령 암살 사건의 배후를 캐려는 이야기, 안전기획부(지금의 국정원)에 숨어 있는 간첩 동림을 찾으려는 이야기, 이렇게 두 사건이 얽혀 있다. 그리고 안전기획부의 no.2라고 할 수 있는 정우성과 이정재가 서로를 의심하면서 갈등을 빚어낸다. 


그러다가, (여기가 재밌는 미스터리다) 한 명은 대통령을 죽이려 하고, 다른 한 명은 간첩 동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동림 또한 북한을 도와 대통령을 제거하려고 한다. 

지독한 악연을 가진 두 사람, 서로를 저주하듯 싫어하던 두 사람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근데 나는 이 장면에서 <신세계>가 생각났다) 결국 먼저 주도권을 쥔 정우성이 이정재를 보호해준다. 목적이 같으니 잠깐 손을 잡은 거라 하면서.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떨까? 진짜 서로 손을 잡을 수 있을까? 목적이 같으면 신념이 다른 사람과도 손을 잡을 수 있나? 반대로 목적이 다르면 신념이 같은 사람끼리도 죽일 수 있나? 영화는 이 두 가지 상황이 모두 나오고, 기꺼이 그렇게 한다. (그래서 무섭다. 신념이라는 건, 이념이라는 건, 종교라는 건, 탐욕이라는 건.)


어쩌면 정우성과 이정재는 그저 순진한 바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사회는 충분히 비정한 데, 그들은 자신의 신념에만 충실했다.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몰랐다. 그래서 자신의 이상을 믿었고, 꿈꿨다. 그러다가 버림받고 말았다. 


그런 현실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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