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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Aug 23. 2022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영화였다

<놉>(조던 필, 2022)의 전반부는 지루했다. 


<겟 아웃>(2017)의 재능이 <어스>(2019)에서 기우뚱했다가, <놉>에서 침몰하는 줄 알았다. 마치 M. 나이트 샤말란이 <식스 센스>(1999) 이후, <언브레이커블>(2000), <싸인>(2002), <빌리지>(2004)로 가버렸듯이 말이다. 하지만 후반부는 대단했다. 아니 담대했다. 그런 포부와 상상력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스포 있음)


한 시간 가까이 곁다리만 두드리며 점잔을 빼던 영화가 갑자기 변한다.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구름 속에 숨어 있는 유에프오인 줄 알았던 것이 (외계에서 온) 괴물이라고 밝혀지는 시점부터다. (이것이 시드 필드가 말한 중간점이 아닐까?) 그리고 사건이 빠르게 흐른다. 주프(스티븐 연)가 운영하는 주피터 파크가 피로 물들고, 주인공 남매는 작전을 짠다. 그렇게 후반부의 기세는 대단하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괴물의 모습이다. 카우보이 모자 같기도 하고, 가오리 같기도 한 그것은 <우주전쟁>(스티븐 스필버그, 2005)의 외계인 비행접시처럼, 살아 있는 것들을 빨아들여 먹는다. 그리고 그것이 다가올 때마다 지옥의 비명처럼 먹히고 있는 인간들의 절규가 메아리친다. 가공할만한 사운드다. 특히 영화의 막판, 마치 끈이 풀린 연처럼 한없이 확장하고 변모하는 괴물의 모습은 우리가 보통 우주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형상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나는 이 점이 정말 좋았다. 하늘에 펼쳐진 괴물의 학익진이었다. (아마 기획단계에서 반대가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의 공포영화가 어둡고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인데 비해, <놉>은 한낮에 넓은 벌판과 하늘에서 출몰하는 괴물을 담는다. 괴물은 하늘의 독수리처럼 먹이를 찾아 인간을 덮친다. 그래서 낮이라 무섭다. 휑한 벌판이라 더 두렵다. 괴물의 모습 또한 낮이라서 더 기괴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이지 않은 장면이 매우 현실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고디. 나는 고디 에피소드가 완벽한 맥커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엔 눈을 마주치면 죽고,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살 수 있다는 설정. 말과 교감하는 주인공이 깨우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였지 싶다. 주프는 고디(침팬지)와 함께 촬영했지만, 그런 사실은 깨우치지 못했다. (어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우연히 고디와 본인 사이에 있던 천조각 때문에 살았던 것이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행운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주프의 서프라이즈 쇼와 말을 제물로 바친 것 때문에 괴물이 정착한 것이므로, 결국 주프의 죽음은 인과응보가 되었다. (그러나 스티븐 연이 그런 역할로 소비된 건 아쉽다. 아마 10년 전이었으면, 제이크 질렌할 같은 배우가 캐스팅되었을 것만 같은데.)  


어쨌든 잘 봤습니다. 처음 타이틀이 떴을 때, 놉의 철자 'NOPE'이 마치 희망이 없다는 뜻처럼 읽혔는데, 클라이맥스를 보면서 정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망할 놈의 영화적 욕망들. 나는 촬영감독 홀스트(마이클 윈콧)의 자연광 운운에서 하마터면 동감할 뻔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예술 따위 쉽게 버리고 갑시다. 


앞으로 조던 필은 어떻게 변할까? 세 편의 영화만 놓고 본다면, 가히 방향성의 공포영화를 추구한다 할 만하다. <겟 아웃>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수평적 사건이었다면, <어스>는 우리 아래에서, 그리고 <놉>은 우리 위에서 기다리는 공포다. 수평과 수직의 공포. 정말로 그런 공간성을 떠올렸을까? 아닐까? 어쩌면 샤말란이 그랬듯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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