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방꾼이 되어 버린, 누군가의 심정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드라큘라>(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92)를 봤다. 극장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1993년 초, 겨울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대한극장 아니면 종로 3가의 어떤 극장에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나는 영화를 보고 굉장히 헛헛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 <드라큘라>를 보면서,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그때는 제법 귀여운 면도 있었네.
이 영화에서 드라큘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나쁜 괴물이 아니다.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아내를 잃고 마는 불행한 기사일 뿐이다. 게다가 그런 슬픔을 위로받기는커녕, 아내가 자살했으니 큰 죄를 지은 것이며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성직자들은 입바른 소리만 한다. 코폴라가 그린 드라큘라는 이렇게 사랑하는 이를 잃고는 신을 버린 애잔한 인간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3> 시리즈의 아나킨이 생각났다.)
영화의 줄거리는 '드라큘라'의 기본적인 이야기를 따라간다. 영화의 초반,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영주 드라큘라(게리 올드만)는 런던으로의 이주를 모색하고, 부동산 구입과 관련하여 변호사 조나단(키아누 리브스)을 만난다. 그런데 변호사의 약혼녀 미나(위노나 라이더)의 사진을 본 드라큘라는 깜짝 놀란다. 과거 자신의 아내 엘리자벳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위노나 라이더는 엘리자벳과 미나를 동시에 연기했다.)
런던으로 건너온 드라큘라는 우연을 가장하여 미나에게 구애하고, 미나 또한 끌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금단의 사랑을 시작한다.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그 두 사람의 위험한 사랑을 응원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사랑이었지만, 괴물과 인간의 사랑이었다. 환영받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불륜이기도 했다. 두 사람 외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을 하고, 죽이려 드는 관계였다. 하지만 반대로 세상에 두 사람만 있다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랑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미나의 약혼자인 (극 중에서 결국 결혼한다) 조나단의 마음은 어떨까?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반 헬싱(안소니 홉킨스) 박사와 조나단, 그리고 다른 희생자의 남편과 친구들이 힘을 합쳐, 드라큘라를 쫓는 장면이다. 여기에 미나도 함께 한다. 미나는 이미 드라큘라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드라큘라를 찾는다. 사람들이 드라큘라를 죽이려 할 때도, 홀로 그들을 막아선다. 사람들 눈에는 괴물이지만, 그녀에게는 연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조나단의 심정을 헤아리고 싶었다. 그는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게다가 두 사람은 내가 모르는, 알 수도 없는, 운명으로 묶인 상태다.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끈으로 이어져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남편이라고, 애인이라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을까? 오히려 내가 사랑의 방해자는 아닐까?
비단 이것은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갑자기 훼방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절대로 낄 수 없는 그 둘만의 관계, 나는 철저하게 소외된 상태일 뿐이다. <피아노>에서 에이다의 남편 스튜어트, <타이타닉>에서 로즈의 약혼자, <물랑 루즈>에서의 공작, <가위손>의 짐이 그랬을 것이다. (나는 늘 그들에게 신경이 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모두가 질투를 느낀다. 속상한 마음이 활활 타오른다. 하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잖아. 그걸 어떻게 되돌릴 수 있겠어. 이럴 때는 그냥 놓아줄 수밖에 없다. 어두운 밤거리로 조용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숭고한 패배다.
그게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건 3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다. 슬프지만 진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