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공간이 존재하는 곳
어제 서울아트시네마에 갔었다.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던 건 아니었다. 시간이 나면, 시네마테크에 가는 걸 좋아한다. 어제는 <바르샤바의 주세페>(스타니스와프 레나르토비치, 1964)를 봤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전선에서 싸우던 이탈리아 군인 주세페가 폴란드의 바르샤바에 머물면서 일어나는 소동극이었다.
사실 우리로서는 쉽게 연관 짓기 어려운 조합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영화라면, 미국과 영국 등의 연합군 이야기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다룬 영화는 많이 봤다. 전쟁의 승자인 연합군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할리우드는 세계의 영화 공장이기도 하고. 하지만 독일과 이탈리아 동맹의 이야기, 게다가 독일군도 아닌 이탈리아 군인이 당시 독일에게 침략당했던 폴란드에서 경험하는 소동극은 아주 생소한 이야기였다.
나는 (미안하지만)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영화를 봤다. 사실 줄거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영화를 보는 그 순간이 즐거웠던 것 같다. 토요일 저녁 7시의 황금 시간대였지만, 관객들도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10명도 안 됐던 것 같은데.
어제 오후, 서울아트시네마 옆 광화문에서는 '기후정의행동'이라는 집회(혹은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그곳을 지나갈 때는 오랫동안 사이렌이 울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옛날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할 때였나, 김만철 씨 가족이 귀순할 때, 온 동네에 사이렌이 울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몇 초간 안보와 관련해서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다.) 그리고 정동길에도 사람이 많았다. 금요일부터 토요일 자정까지 '정동 야행'이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언제나 사람은 많았지만) 그래서 차를 통제했고, 사람들은 즐겁게 거닐었다. 붐볐고, 왁자지껄했다.
하지만 서울아트시네마만은 적막했다. 1층부터 고요했고, (주말이라 1층 안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 <바르샤바의 주세페>는 인기 있는 영화도 아니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붐비는데, 극장 안에서는 64년도에 동유럽에서 만들어진,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블랙 코미디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
그런 풍경이 재미있었다. 마치 잠깐 시간여행을 떠나온 기분이었다. 쓸쓸한 풍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는 그렇지 않았던가?
아주 예전에 시네마테크를 물어물어 찾아다닐 때의 일이다. (95년이거나, 96년이거나, 97년일 것이다) 당시 사당동에 있던 '문화학교 서울'에 갔었다. 토요일 오후였다. 거기서 <움베르토 D>(비토리오 데 시카, 1952)를 봤다.
관객은 서너 명 정도. 눈부신 주말, 서울의 어떤 곳에서는 몇 명이 모여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보고 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영화 전공자도 아니었다) 영화가 끝난 뒤, 밖에 나와보니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그냥 조용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움베르토 D>는 쓸쓸한 영화였다. 시네마테크는 쓸쓸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좋았다.
그런 풍경을 수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