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나는 <이벤트 호라이즌>의 내용을 모른다
우리의 공간은 야생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예전엔 골목을 걷다가, 친구네 집 창문을 두드리면 친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하고 돌아가다가 같은 동네에 살던 이모네 집 부엌문을 열고 냉수를 얻어마시기도 했다. 모두 오래전 이야기다.
극장도 마찬가지다. 길을 걷다가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들어가, 바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단관 극장 시절에는 바깥 공간과 상영관까지의 거리가 매우 짧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멀티플렉스는 진입장벽이 높다. 쇼핑몰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표를 구매한 뒤,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서야 상영관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곳이 코엑스의 M극장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이벤트 호라이즌>(폴 앤더슨, 1997)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개봉 당시 극장에서 봤다. 그러나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 어두컴컴한 극장과 역시나 어두컴컴한 화면과, 어두운 내 마음만 기억날 뿐이다.
이상한 시절이었다.
(아마도) 11월이었고,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계속해서 실패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군대를 가야 했다. 게다가 여자 친구와도 소원해질 대로 소원해졌다. 날씨는 흘렸고, 바람은 차가웠으며,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건 사실일 수도 있었다.)
그날, 나는 충무로와 을지로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방금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진 (사실은, 차인) 상태였다. 공중전화부스에 나왔을 때,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여친 대신) 때리고 지나갔다. 드디어, 일어나고 말았다. 몇 개월 전부터 위태위태했던 일이었다. 참으려 했는데, 결국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대한 극장이 있었다. 나는 매표소로 달려갔다. 무슨 영화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구걸하듯 표를 샀다. 처음에는 표를 끊어주지 않으려 했다. 영화가 시작된 지 한참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표정을 보고는 표를 건네줬다. (어떤 표정이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나는 극장으로 뛰어들었다. 평일 낮.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나는 어두운 객석에 앉았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울었습니다. 하하.
무슨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데, 줄거리는 전혀 따라잡을 수 없었다. 굉장히 쓸쓸하고 무서운 영화라는 건 느낄 수 있었는데, 어떻게 전개됐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여전히 <이벤트 호라이즌>을 보고 싶지 않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
단지 나는 장소가 필요했을 뿐이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 곳. 그게 화장실이든, 땅굴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근처에 극장이 있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극장 중 하나인 대한 극장이. 나는 그곳에서 <백 투 더 퓨처>(로버트 저메키스, 1985)를 봤다.
그리고 <당신이 잠든 사이에>(존 터틀타웁, 1995)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보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던 날, 객석에서 고양이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고양이가 아닐 수도 있다. 고양이가 아니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멀티플렉스에서 외면한 <옥자>(봉준호, 2017)나 <아가씨>(박찬욱, 2016)을 본 곳이기도 하다. <캐롤>(토드 헤인즈, 2015)은 또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지금도 나는 그날의 극장에게 감사한다. 가장 필요할 때, 나를 숨겨주었다. 잠시라도 쉴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사람들 많은 길거리에서 꽤나 민망했을 것이다. (이야, 정말 다행이다) 그런 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잘 없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