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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Nov 19. 2022

이웃의 상영회

여러 상영회를 준비하고 있지요.

<비카인드 리와인드>(미셸 공드리, 2008)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엔딩 장면은 뭉클하다. 


철거를 앞두고, 영화의 주요 무대인 비디오 가게에서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만든 영화를 마지막으로 상영한다. 이제는 사라지는 동네, 그리고 사람들. 영화 상영은 마치 고별무대 같다. 그때 창밖에서 우레와 같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밖에서 기다리던 철거반원들이 창문으로 비친 영화를 보고 있던 것. 이렇게 <비카인드 리와인드>는 '함께' 영화를 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자신이 만든 영화를 즐겁게 봐주는 것만큼 좋은 건 없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상물이 세계 최초의 영화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는 공동 관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전에도 영화 비슷한 것은 있었다. 특히 에디슨(과 딕슨)이 발명한 키네토스코프는 영사기의 일종이었다. 다만 키네토스코프는 1인 전용이었고, 이를 개조한 시네마토그래프는 지금의 영사기(혹은 빔 프로젝터)와 비슷했다. 

뤼미에르 형제는 이를 가지고, 1895년 12월 28일 파리의 그랑 카페 지하 인디언 살롱에서 <공장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비롯한 10 여 편의 영상물을 상영했다. 1프랑의 입장료와 33명의 관객과 함께. 


나는 지금까지 두 번의 상영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대단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소소한 영화 상영회였다. 


첫 번째 영화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스탠리 큐브릭, 1968). 이 영화의 극 중 배경인 2001년에 상영회를 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종로의 한 시민단체 강당을 빌려서 상영회를 열였다. 당시 <씨네 21>의 소식란에 홍보도 하고, 인터넷 카페 여기저기 홍보글도 올렸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을 불렀다. 행사 당일 대략 50명은 모인 것 같았다. 인사를 하고, 영화를 상영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던가?


스탠리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때문에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영화를 만들었다는 의심을 받았다.

나는 그곳에 모인 관객 모두가 잠을 자는 광경을 보았다. 실로 진귀한 풍경이었다. 몹시도 불편한 철제 의자에 앉아서, 다들 열심히 주무셨다. 맨 뒤에 앉아 있던 나와 다른 스태프들만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긴 시간이 끝나고, (러닝 타임이 2시간 30분이었다) 잠에서 깬 친구들이 달려와 내 멱살을 잡았다. "SF영화라며.", "우주선도 나온다며?"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단지 <스타워즈>가 아니었을 뿐.


그다음 상영회는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였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19년 11월. 그래서 나는 2019년 11월에 <블레이드 러너> 상영회를 열었다. 당시 막 개관한 독립영화전용관의 아침 시간을 빌려서, 4명의 관객과 함께 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졸지 않았다. 킥킥거리며, 잡담도 했다. 즐거운 영화 시간!


제대로 상영회를 하려면, LA에 갔어야 했는데.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도, 아주 아이였는데, 데커드(해리슨 포드)보다는 로이(룻거 하우어)가 좋았다. 그에게서 간절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OTT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여전히 나는 극장이 좋다. 극장이 아니어도, 요즘엔 괜찮은 빔 프로젝터나 대형 TV들이 있으니까, 작은 공간에라도 삼삼오오 모여서 영화를 보면 좋겠다. 물론 나는 사람들 뒤에 숨어 혼자 영화를 보겠지만.  


다음 상영회는 언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약한 영화는 있다. 그건 바로 <블레이드 러너 2049>(드니 빌뇌브, 2017). 당연히 상영회는 2049년이다.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꼭 오세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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