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동시상영관에서 만난 진짜 사랑 이야기
친구와 나는 사이좋게 대학에 떨어졌고, 재수 학원을 함께 다녔고, 결국 같은 대학을 지망했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시간이 한참 남아서 뒷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거기서 뜻밖에 동시상영관을 발견했다.
내가 중학생이던 1980년대에는 동시상영관이 많았다. 어쩌면 그런 동네에 내가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인가 가면 가리봉 시장이 나왔는데 그곳은 동시상영관의 천국이었다. 사람들은 삼류극장이라고 불렀지만, 나에겐 행복의 나라였다. 공단 극장, 천일 극장, 가리봉 극장. 주로 <엘리미네이터>(피터 마누지안, 1986)나 <강시선생3-영환도사>(유관위, 1987) 같은 영화를 보러 다녔다. 영화도 재미있었지만, 담배 연기 가득했던 극장과 극장 주변의 뒷골목이 더 생각나는 동네였다. 그래, 난 동시상영관 키드였지.
추억의 동시상영관이군, 이라고 친구가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극장에서는 당연히 두 편의 영화가 번갈아 상영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하나는 액션영화, 또 하나는 애로영화. 하지만 여기는 조금 달랐다.
한 편은 이름도 모르는 외국영화였고, 다른 하나는 국산 애로영화였다. 실은 그 한국영화가 무척 보고 싶었다. 친구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서로에게는 점잖은 척했다. 친구는 주로 외국영화에 대한 칭찬을 했다. 그 외국영화는 깐느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함을 인정받은 영화이며, 예술성이 철철 넘치는 훌륭한 감독이 만들었다고. 자기는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지금 눈앞에 상영관이 있다니 당장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시간표상으로는 지금 한국 애로영화가 상영될 예정이었고, 다음 프로그램이 그 훌륭한 외국영화였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 영화를 보고 그다음은 그때 가서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이 중요했다.
극장 안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일 낮부터 동시상영관에 오는 인간은 우리 말고는 없는 듯했다. 동네 안경원이나 갈빗집 같은 지역 광고가 두 번씩 상영되고 나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국영화가 아니라 외국영화였다. 이 영화가 아닌데? 친구도 옆에서 작은 한숨을 쉬었다. 뭔가 억울했지만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잠자코 영화를 봤다.
제목은 <피아노>(제인 캠피온, 1993)였다.
잡담을 나누던 우리는 쇼팽의 피아노곡을 배경으로 광활한 뉴질랜드의 풍경이 시작되는 순간,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영화 속에서는 알 것 같기도 하고,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기도 한 사랑이 그려지고 있었다. 폭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애정인 것처럼 보이는 이상한 관계가 펼쳐졌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면서도, 여자의 남편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고나 할까? 음, 도저히 모르겠다. 이런 영화를 본 적이 있어야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들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다음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 조용히 극장을 나왔다. 애로영화를 볼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밖에 나와서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면접을 보러 갔을 텐데 그 뒤의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극장이 추웠다는 것은 기억난다. 의자에 오징어 냄새가 배어있던 것도. 그리고 뉴질랜드의 척박한 땅과 숲, 통나무집 같은 것도.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사랑의 풍경도. 마음 어딘가가 아려왔다는 것도.
시간이 지나고 그 대학에 합격했지만, 친구는 떨어졌다. 나는 정말 친구랑 같이 다니고 싶었나 보다. 친구의 불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미련 없이 그 대학을 포기하고 집 근처의 학교에 입학했다. 친구 또한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봄이 왔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직업은 대학생이라고 했던가? 이후 우리는 각자의 생활에 집중하게 되었고, 점점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이 모든 게 왠지 <피아노>부터 시작된 것 같다. 극장에서 나왔을 때 세상이 미묘하게 바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딘지 모르게 낯설어졌다고 해야 하나? 우리가 극장에 있는 동안 몽땅 변했는지도 모른다. 나나 친구마저도.
그런데 왜 그때 시간표와 다른 영화가 상영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