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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Dec 27. 2022

본즈 앤 올

각자의 사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본즈 앤 올>(루카 구아다니노, 2022)을 보면서 처음 떠올린 영화는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 2의 10번째 에피소드인 <광신도들>(피터 매닥, 2007)이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사실은 식인마였으며, 그를 추종하는 조지 워싱턴 광신도들, 이른바 워싱토니안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 2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지만,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심야상영 때 봤다) 보기 고약한 영화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가 계속될수록, 숙명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을 뜯어먹고 싶은 욕망. 저주받은 형질. 가지고 싶어서 갖게 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본즈 앤 올>은 여타의 인정받지 못하는 부류들, 예를 들면 뱀파이어처럼 인간사회와 공존하기 어려운, 그리고 범죄라 불리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타자(괴물)에 관한 이야기가 된다.  (하필이면 사람을 씹어먹는 충격적인 본능을 가졌을 뿐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이런 사람들(혹은 뱀파이어 등등)을 만날 수 없으니, 그저 공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혹은 지금도 논쟁이 되고 있는 퀴어의 인정 여부를 생각해 보면,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주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들, 식인 습성을 지닌 연인의 끝은 어떻게 될까? 


안 어울리는 듯,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박쥐>(박찬욱, 2009)에서 송강호와 김옥빈이 그랬던 것처럼, 끝은 정해져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끝을 알고 있는 사랑, 끝이 정해진 여행이 된다. 여기에 해피 엔딩은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한 설리가 오히려 이들의 엔딩을 도와준 셈이기도 하다. (만약 이들이 해피 엔딩을 맞이하려면, 소설 <나는 전설이다>(리차드 매드슨)처럼 인간을 말살하고 새로운 종족으로 나타나야 한다. (영화와 소설의 엔딩이 다르다.)


기괴한 영화였지만, 여러 가지가 아름다웠다.


시나리오적인 면에서 봤을 때, 구성이 좋았다. 우선, 발단이 근사했다. 친구네 집에서 친구의 손가락을 물어뜯는 장면(사전 정보 없이 봤다가, 이 장면에서 충격을 받았다)은 굉장했다. 매런이 처음에는 설리를 만났다가, 그다음에는 리를 만나는 식의 전개도 좋았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노인을 만나는 게 낫다. 자연스럽게 연착륙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다음에는 리처럼 또래를 만나는 것이다. (이런 진행이 부드러웠다) 그리고 유부남 게이를 죽이고 먹는 장면도 좋았다. 그에게 아이와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윤리적 혼란에 빠지는 것이 극 초반에 등장했다면, 매런의 정신이 붕괴되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만나는 장면(몇 년 간, 가장 무서운 장면이었다)이나 마지막 엔딩, 특히 설리의 재등장과 종말은 근사했다. 시나리오를 잘 쓴 영화였다. 


음악도 좋았다. 이 영화의 음악은 상당히 좋다. 키스(KISS)의 음악부터 귀에 들어왔는데, 대체로 서정적인 음악이 주를 이뤘다. (자꾸 <브로크백 마운틴>이 생각났다. 음악이 비슷한 건지, 설정이나 엔딩이 비슷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도 자연스럽게 음악이 장면에 녹아들어서, 정신을 차리고 음악을 들어야 했다. 음악을 들으며, 장면을 보다가 느닷없이 나는 영화적 감각이 예민하지 않구나, 하는 성찰과 반성을 하고 말았다.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어야 영화를 연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배우들도 예쁘고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장면들, 특히 엔딩으로 쓰인 피크닉 장면은 섬세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좋은 순간이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티모시 샬라메의 미모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나도 동의한다) 테일러 러셀을 잊으면 안 된다. 10살쯤 어린 캐릭터를 맡아, 공포와 혐오와 본능을 여리게 잘 표현했다. 


행복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문득, 이 영화를 추천해준 분이 떠올랐다. 


(원래는 함께 보기로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는 왜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했을까? 그는 <티탄>(쥘리아 뒤쿠르노, 2021)을 매우 좋아한다. 그렇다면, <본즈 앤 올>과 <티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물론, 앞서 말했던, 끝이 보이는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 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라는 점. <티탄>에서는 아버지와 그의 (실종된) 아들인 척하는 여자의 이야기, 혹은 아버지 때문에 티탄으로 된 머리를 갖게 된 여자의 이야기다. <본즈 앤 올>에서는 식인 습성을 물려준 (자기 손마저 뜯어먹은) 엄마와 딸의 관계,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먹어버린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분은 이런 부분에 관심 있는 걸까? (처음 같이 본 영화는 <마미>(자비에 돌란, 2014)였다!!) 


아마도 물어볼 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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