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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an 06. 2023

찰나의 즐거움이었다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몰래 영화를 보던 순간 

2010년이었던가. 부산에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시네마테크 부산으로 향했다. 잘하면 마지막 타임의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영 시작 시간을 훌쩍 넘겨 도착하고 말았다. 매표소는 이미 닫혔고, 안내하시는 분도 없었다. 마치 유령 극장 같았다. 


물론 아니었다. 상영관에서는 영화가 상영 중이었으니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앞문이었는지 뒷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앞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문 앞 커튼 옆에 기대어 서서 영화를 봤다. 


솔직히 말해서, 극장에 들어가는 순간 누군가 말을 걸어올 줄 알았다. '어떻게 오셨냐'며, '입장권을 사야 한다'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러면 표도 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관객들도 몇 명 있었는데,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커튼 옆에 서 있던 나는 잠시 후,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찬찬히 영화를 봤다. 장 르누아르의 영화인 건 알았지만-장 르누아르 상영전이었으니까-영화 제목은 몰랐다. 지금은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영화가 르누아르다웠다는 건 기억난다. 따뜻하고 묵직하고 부드러웠다. (그래서 행복했다.)


미안하게도 영화는 다 보지 못했다. 초반부도 잘라먹었는데, 후반부는 통째로 날렸다. 급한 연락이 왔고, 다시 업무지로 돌아가야 했다. 너무나 아쉬웠지만, 직장인의 숙명이기도 했다. 결국 들어왔던 문으로 조용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몰래 들어갔다가 몰래 나온 셈이랄까.


지금도 그 영화가 생각난다. 제목도 모르는 영화지만. (어쩌면 영영 알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그때 영화를 보던 그때가 자꾸 생각난다. 늦가을, 부산, 수영만, 바다냄새, 불 꺼진 극장, 그리고 르누아르. 다시 생각해 봐도 참으로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그 극장은 이후 사라졌다고 한다. 시테마테크 부산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다시 찾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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