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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Jan 12. 2023

사적 복수는 어떻게 하는가?

블롬의 방법 혹은 문동은의 길

넷플릭스에서 <우먼 오브 더 데드>(2022)와 <더 글로리>(2022)를 연달아 봤다. 둘 다 복수에 관한 드라마였고, 여자가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한 편은 뜨거운 분노, 다른 한 편은 차가운 마음을 가졌달까?


(*스포 조금)


<우먼 오브 더 데드>는 남편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집 앞에서 뺑소니 사고로 죽은 남편. 하지만 경찰이었던 남편은 어떤 사건을 쫓다가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아내(블롬)는 남편의 죽음과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로 결심한다. 블롬은 그야말로 분노의 사자와 같다. 앞뒤 가리지 않고, 내막을 파헤친다. 그리고 걸려든 범죄자들을 처단한다. 마치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분노를 표출한다. 


반면에 <더 글로리>의 문동은(송혜교)은 조금 다르다. 그는 고등학교 때 당한 학교폭력으로 모든 걸 잃었다. 아마 영혼마저도 태워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18년 동안 복수를 준비한다. 그야말로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삶이었다. 오직 복수를 위해 교사가 되고, 바둑을 배우고, 그들의 가족과 친해진다. 인생 전체가 복수와 동기화되었다. (아마도 복수가 끝나면, 삶의 의지조차도 남지 않을 것이다.-이런 점에서는 <올드보이>의 이우진과도 비슷하다-하지만 문동은은 이미 자신은 18년 전에 죽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할 것 같고.)


이렇게 한 명은 드러내서 보여주는 식으로 복수한다. 화끈한 복수다. 다른 한쪽은 조용히, 슴슴하지만 섬뜩하게 실행한다. 아마도 정신건강 면에서는 블롬이 훨씬 건강할 것 같다. 복수가 끝나면, 행복하게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동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아마도 복수가 끝나면, 삶의 의지조차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는 <올드보이>(박찬욱, 2003)의 이우진과 비슷하다) 자신은 이미 18년 전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할 듯싶지만.


이들이 사적 복수를 하는 이유는 사법 시스템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우먼 오브 더 데드>의 배경인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 바트 아넨호프는 쇤보른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곳이다.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조차도 그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도 쇤보른과 경찰은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다) <더 글로리> 속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사회를 움직이는 건 돈이다. 범죄를 저지르건 말건, 인간성이 나락으로 떨어졌건 말건, 돈이면 대대손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이런 부조리를 몸소 겪은 뒤, 직접 복수에 나선다. (물론 <더 글로리>의 문동은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이들의 복수에 열광한다는 점이다. 


기득권층, 상류층, 혹은 뭐라 부르든 간에 자신들만의 공고한 카르텔을 구축하고 있는 집단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런 집단에 균열을 일으키는 건, 너무나 어렵다. 그들은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물림하기 위해 사회 질서를 교란한다. <우먼 오브 더 데드>의 쇤보른 가문이나 <더 글로리>의 박연진, 전재준 집안은 그런 카르텔을 대표한다. ('나이스한 개새끼' 허도영도 마찬가지다.)


만약 상위 1% 이내의 이들과 (불행히도) 대립하게 된다면 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고, 아니면 도망치거나, 위자료 받고 사라지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대개는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하게 당할 뿐이겠지. 지금 사회 시스템에서는 방법이 없다. 합법적이지만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블롬이 박수를 받고, 문동은에게 열광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실 속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복수를,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대리만족한다. 그래서 두 편의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면서, 다 보고 나서도, 통쾌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건 영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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