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를 욕하기도, 위로하기도 어렵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1971년 작 <사계절의 상인>을 봤다. 85분짜리 러닝 타임. 그리고 몇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소박한 이야기. 뉴저먼 시네마 시대를 풍미한 파스빈더는 37살에 요절했는데, 그 짧은 생애 동안 40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하지만 다작 때문인지 (다 보진 않았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그때그때 달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계절의 상인>은 어땠을까?
영화는 한스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외인부대에 입대했다가 돌아온 한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한스를 냉대한다. 그리고 정비공이 되려는 한스의 꿈을 막아선다. 그리고 현재. 한스는 과일행상을 한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한스의 행상을 따라다니는 그의 아내는 한스의 불륜을 의심한다. 한스는 매번 화를 내며 행상을 팽개치고는 술을 마시러 간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혼자서 수레를 끈다.
처음에는 이런 내용의 영화인 줄 알았다. 애정, 삼각관계, 불륜 같은. 그런데 영화는 이상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스포 있음)
술을 마신 한스는 아내를 때리고, 이혼 직전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진다. 아내는 병원의 한스를 간호하지만, 어쩌다 매춘(혹은 불륜)을 한다. (그걸 또 딸에게 들킨다) 병원에서 돌아온 한스는 일을 대신해 줄 직원을 고용하는데, 하필이면 아내가 몰래 정사를 즐겼던 그 남자다. (이상한 건, 딸이 그 남자를 알아보는 일이 없다는 것!) 불안한 아내는 모략을 꾸며 남자를 쫓아낸다. 이후, 한스의 전우 해리가 직원으로 돌아온다. 해리는 정직하고 친절하다. 장사는 잘 되고, 가정은 평온하다. 그런데 한스는 갑자기 무력감에 빠진다. 장사에 무관심하고,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 과거의 불륜 상대를 만나러 가서는, 정사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술을 잔뜩 마시고는 죽는다.
이런 영화였다.
일단, 나는 이 영화가 부러웠다. 아니 파스빈더가 부러웠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도 되는 시절에 살았구나. 스토리는 엉성하고, 연기는 이상했다. (특히, 웃는 장면들이!) 사건의 개연성은 하나도 맞지 않았다. 한스의 사랑, 아내의 사랑, 어느 것도 논리적이지 않다. 한스가 무기력증에 빠지는 상황 또한 그렇다.
물론 현실에서야,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인생은 없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어떤 계기나 설정이 있게 마련이다. 파스빈더가 그런 장면을 '점프 컷' 했을 뿐. 그리하여 카프카의 부조리극처럼, 기이한 인생의 한 단편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물론 내재된 원인을 짐작할 수는 있다. 바로, 엄마와 한스의 관계다.
엄마는 한 번도 한스를 신뢰한 적이 없다(고 한스의 여동생이 지적한다). 전쟁에 나갔다 돌아온 한스에게 따뜻한 표정 한 번 짓지 않는다. 그나마 엄마가 한스에게 칭찬하는 장면은 과일 행상이 잘 돼서, 돈을 제법 벌고, 향후 가게를 낼 수 있다고 얘기할 때였다. 그때조차도, 엄마는 한스가 과일 행상한다는 얘기를 어디 가서 하지 못했다고,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참 나쁘다.) 아마 한스가 무기력하게 생을 마감하는 이유가 있다면, 어릴 때부터 느꼈던 엄마의 눈길 때문이지 않은가 싶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이 모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영화는 괴상하다. 어떤 포인트에서는 재미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뒤죽박죽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봤다. 극장에 가기 위해 시청에서 내렸을 때, 성조기를 들고 공산주의자를 쫓아내자는 집회 참가자들과 맞닥뜨렸다. 그들을 지나 정동길을 지나는 동안, 봄날의 주말을 즐기는 연인과 가족 무리를 지나쳤다. 70년대 서독에서 만든 이 멜로드라마를 보고 나서, 다시 시청역으로 향했을 때는 상록수를 합창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간이 마구 뒤섞이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2000년대 초반, 일본문화원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볼 때가 생각났다. (뜬금없는 전개다) 밖에서는 봄날의 청춘들이 데이트를 하는데, (문화원은 안국동에 있었다) 일본문화원의 시청각실에서는 70대 노인들이 가득 모여 옛날 일본영화를 원어 그대로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감상(혹은 추억)에라도 빠진 듯, 자기들끼리 일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분들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로비에서 일본어로 얘기했다) 지금도 그 기묘한 광경이 잊히지 않는다.
영화만큼이나 뒤죽박죽인 기억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