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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Aug 25. 2023

나의 일본은 무엇이었을까?

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일본영화들 1

아마도 처음은 <플란다스의 개> 아니면 <미래소년 코난>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은하철도 999> 거나 <천년여왕>이거나. (<천년여왕>의 서늘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건 애들 만화가 아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인조인간 캐산>이 있었다. 더불어 <별나라 손오공>의 퀸 코스모스호가 생각나고, <무적 009>도 떠오른다. 내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만났던 일본 만화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소년에게 소녀를 구한다는 내용은 최고로 유치하면서도 매력적인 설정일 것이다. 그것도 라나 같은 아이를.

누구나 그랬듯이, 80년대 만화영화를 보면서 그게 일본 작품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주제가의 멜로디까지 똑같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90년대 <북두신권>이나 <드래곤볼> 같은 만화가 해적판으로 나오고, <슬램덩크>와 <짱구는 못 말려>, <바우와우> 같은 만화가 정식발매되면서 종이책으로는 일본만화를 볼 수 있었다. 


대학가는 더 대단했다. 축제 때가 되면, 경쟁하듯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의 토토로>, <붉은 돼지>를 상영했고, <반딧불의 묘>라든지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같은 애니메이션도 단골 상영작이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 주변에는 하루에 두 번씩 일본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카페('블랙 마리아'였던가)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전부터 아는 사람들을 통해 <아키라> 같은 작품을 봤다. 나중에는 <귀를 기울이면>, <공각기동대> 같은 작품도 볼 수 있었다. 와, 90년대의 일본은 대단한 세계였다.


1996년이었던가, 1997년이었던가. 홍대, 신촌을 돌아다니다가-아니면 어디 대학 캠퍼스 안이었을 테지-이화여대 만화동아리에서 오토모 카츠히로의 신작 <메모리즈>를 상영한다는 포스터(라기보다는 전단지)를 보고는 동네 친구를 꾀어서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큰 강의실에서 2시간 동안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 말고는 모두 여학생들이라는 사실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었다. 불이 켜지자마자 친구랑 황급히 교문을 나왔다. 화장실은 지하철역을 이용했던 것 같다. (바보.)


평범한 사람들조차도 1990년대에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봤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생긴 멀티플렉스 강변 CGV에서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관계로 특별히 상영을 허락받았던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하나비>를 친구와 함께 봤다. (절친이었지만, 그 친구와는 <하나비>를 끝으로 연락이 끊어졌다.)


나는 일본을 좋아했다. 하루키나 미야베 미유키, 이사카 고타로의 책들, 그리고 쿄고쿠 나츠히코의 괴담들, 엑스재팬과 피시만즈의 음악들,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자와 아키라의 옛날 영화들. 심지어 담배도 일본 담배만 피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때 사람들이 나보고 친일파라고 그러면 웃어주었다. 껄껄껄) 그래서 젊은 날의 기억은 모조리 일본에 관한 것이지만, 


오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핵오염수 방류를 보면서, 매우 슬픈 마음이 되었다. 지금의 일본을, 그리고 그 옛날의 일본을. (갑자기 구로자와 아키라의 <꿈>에 나왔던 핵발전소 폭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공교롭게도 친구들과 <꿈>을 함께 보고 나서 며칠 뒤, 후쿠시마 발전소가 무너졌더랬다.) 


나는 여전히 일본 문화를 좋아하고, 또 일본 영화를 보겠지만,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같은 영화는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오늘의 행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이건 인류 차원의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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