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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Aug 29. 2023

나의 일본은 무엇이었을까?

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일본영화들 2 - <귀를 기울이면>(1995)

1997년 5월 마지막 주 일요일 아침 6시, 갑자기 눈이 떠졌다. 햇살이 내 방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보기 좋게 떨어졌고, 안온한 마음으로 눈을 뜬 나는 TV위에 있던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된다. 친구에 빌린 복사본 테이프. 사인펜으로 비뚤비뚤 쓰인 제목 <귀를 기울이면>.


무엇보다 섬세한 배경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야옹이가 조연이라니.

5월 한 달 동안, 무슨무슨 실습에 참여했던 나는 전날 마지막 실습을 마치고는 기진맥진한 몸으로 오후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는데, 세상에 12시간도 넘게 자고 말았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뭔가를 끝마쳤다는 후련함. 잘 자고 일어난 개운함. 더구나 5월의 일요일, 따뜻하고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홀린 듯, 비디오테이프를 비디오데크에 넣고는 침대에 누워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 한 편인 <귀를 기울이면>(콘도 요시후미, 1995)은 그렇게 만났다. 어쩌면 영화를 보지 않고, 다음 날 친구에게 돌려줬을지도 모른다. 영 내키지 않는 영화였고, 며칠째 방치되어 있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영화가 나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종종 그런 경우가 있었다. 서점에서 혹은 레코드가게에서. 우연히 뽑아 든 책이 정말 마음에 든다거나, 빽빽한 CD들 사이에서 기가 막힌 밴드를 찾는다든가 하는 경우는, 거꾸로 그들이 나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찾아야지,라고 생각할 때였다.

도서관, 소설가, 음악, 지하철, 꿈 그리고 여름의 햇빛과 구름. <귀를 기울이면>은 당시 내가 선망하던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한 여중생의 로망이 어쩌다가 나에게 이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그 옛날의 아현동 주택가를 연상하게 만드는 할아버지의 작업실, 그리고 작업실로 이어지는 계단과 골목실, 높은 하늘은 참으로 낭만적이었습니다.  


아직도 책장에는 <귀를 기울이면> 비디오테이프와 DVD가 있다.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단독 개봉했을 때도 보러 갔었고, 케이블 TV에서 방영할 때도 보았다. 하지만 올해 개봉한 실사판은 도저히 못 보겠네요. 일본 애니메이션의 실시판은 악명 높기로 유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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