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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Sep 01. 2023

나의 일본은 무엇이었을까?

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일본영화들 3 - <러브레터>(1995)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1995)를 알게 된 건,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다. (예전에 이 브런치에도 쓴 적이 있는데,) 학교 근처에 있던 수상쩍은 비디오가게에 갔다가, 평소에 한 마디도 하지 않던 가게 주인이 아름다운 아가씨 두 명에게 달려가 무척 친절하게 <러브레터>를 권하는 모습을 보면서 귀동냥으로 듣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주인아저씨가 얄미워서 싫어서 이 영화도 보지 않았다. 


영화를 본 건, 몇 년 뒤다. 


처음에는 재밌는지 몰랐다. 너무 정색하고 시작하는 와타나베 히로코의 사연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후지이 이츠키의 과거로 넘어가면서 (내 생각에) 영화는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일본의 중학교 풍경, 80년대의 느낌, 귀여운 학생들. 풋풋한 로맨스.


나중에 이와이 슌지 영화들을 보면서 알게 된 건데, 이와이 슌지는 실내에서 조명을 굉장히 과도하게 쓴다. 창밖에서 폭풍처럼 빛이 들어와 넘실거린다. (이건 최근의 일본 멜로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혹시 일본영화의 특징인가? 아니면 이와이 슌지의 멜로 스타일을 따라한 건가?) 노출 오버의 조명을 빈번하게 사용해서 이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 


<러브레터> 같은 영화는 어른들의 후일담이다. 그러니 따뜻할 수밖에. 

게다가 후지이 이츠키와 후지이 이츠키는 도서관을 매개로 이어진다. 도서관이 그렇게 낭만적인 곳이었던가? 아마 그렇게 느껴진다면, 이건 모두 <러브레터> 때문일 것이다. 소녀에게 잘 보이려고 책을 읽는 소년. 그 사실을 모르는 소녀. (이 내러티브는 <귀를 기울이면>(1995)과 매우 비슷하다.) 


<러브레터>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는 편이다. 너무 무거운 와타나베 히로코 쪽의 사연("오겡끼데스까"는 너무 유명한 밈이 되었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이제는 새롭지 않은 엔딩의 반전. 그래서 최근에 <러브레터>를 보는 주변 친구들의 반응은 심드렁하기만 하다. 그래 세월이 많이 지났지. 90년대로부터 30년이나 흘렀으니까. 그 30년 동안의 변화를 주도했던 게 90년대의 <러브레터>였다고. 처음 봤을 때는 세상에, 이런 영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영화는 어떨까?


지금이 일본영화는 <러브레터>와 같은 설정에서 파생되었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흐르고 말았다. <러브레터>에서도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고, 1인 2역과 동명이인이 등장하면서 시간을 변주한다. 하지만 최근의 일본영화(애니메이션 포함)는 시간여행이 빈번하다. 그것도 주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섞이는 타임워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2016). 촉촉한 감성과 그림체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2016).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타임워프 로맨스물이다.

일본영화는 현실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시대로 떠나려 한다. 어쩌면 사회 전체가 현실도피를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10년 뒤, 20년 뒤에는 한국영화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 사회 변화의 흐름이 비슷하고, 요즘 같아선 꼭 일본 같은 한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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