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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Sep 05. 2023

나의 일본은 무엇이었을까?

8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일본영화들 4 - 와카마츠 코지의 영화들 

와카마츠 코지의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2008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에로스, 학살 : 일본 언더그라운드 영화 걸작선>부터다. 


이 포스터를 구해서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붙여놓기도 했다. 보스가 굉장히 싫어했었다.

그 상영전에서 아다치 마사오, 하니 스스무 그리고 와카마츠 코지의 영화를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굉장히 좌파적인 스토리와 태도, 남들 눈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에로스, 그리고 촌스럽고 완성도 덜컹거리는 뻔뻔한 전개. 한 마디로 야하면서 정치적인 영화였다.  


그날 이후, 일본의 일명, 핑크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본래 핑크영화는 1960년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저예산 에로영화를 뜻한다. 일반 영화 제작빙의 1/10 정도의 수준으로 2주 정도의 제작기간에, 러닝타임도 60~70분 저도 밖에 되지 않는다. 정사 장면은 10번은 들어가야 하고, 절대로 성기가 나와서는 안 되는 등 조건이 있었다. 이런 핑크영화는 1950년대 말부터 일본 영화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해서 1965년인가 즈음엔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45%를 핑크영화가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핑크영화의 전통은 다시 1970~80년대 닛카츠 로망 포르노로 옮겨간다. 닛카츠 로망 포르노는 핑크영화보다 고품격의 완성도를 자랑했는데, 80년대에는 이러한 로망 포르노가 일본영화의 절반 정도는 차지했다고 한다. 


핑크영화든 로망포르노든 영화사에서 원하는 제작비, 제작기간 그리고 정사 장면만 집어넣으면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감독에게 재량권을 주는 식으로 자유를 허했다. 그러다 보니, 와카마츠 코지 같은 감독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원래도 와카마츠 코지는 제멋대로 살긴 했다. 야쿠자 생활도 했고, 조감독 시절엔 시나리오가 당일 바뀌었다고 프로듀서를 때리기도 했다.)


와카마츠 코지의 영화는 굉장히 많다. 그의 영화는 핑크영화니까, 야하다. 지금의 젠더 감수성 시각으로 본다면, 욕먹을 영화들도 많다. (애초에 핑크영화라는 것 자체가 여성이 성 상품화, 남성의 관음증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이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와카마츠 코지의 영화가 다른 핑크영화와 다른 점은 정치성이다. 와카마츠 코지는 감독 경력의 중간 어느 지점에 이르러 변한다. 정확하게는 1965년 <벽 속의 비사> 사건이다. 



이 영화는 당시 일본의 공식적인 출품작을 제치고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르게 된다. 당시 일본 중산층을 상징하는 주택단지를 무대로 중산층의 일상과 좌파의 변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영화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하자, 일본영화제작자연맹 등 일본영화계는 이 영화를 가리켜 '국욕영화'라며 맹렬히 비난한다. 즉, 일본을 실상을 까발려서 국제사회에서 일본을 욕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와카마츠 코지는 자신의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자주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핑크영화를 넘어서는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와카마츠 코지를 본 건,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마스터클래스에서였다. 그때 와카마츠 코지는 동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발전소 사건에 대해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조금 잠잠해지면, 후쿠시마 발전소와 도쿄전력에 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밝혀, 그곳에 모인 관객들의 응원과 걱정을 샀다. 그때 어떤 관객이 말했다. "(오늘 발언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가면, 몸조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와카마츠 코지는 웃으면서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와카마츠 코지는 일본으로 귀국한 지 얼마 안 되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나는 그 사고가 굉장히 의심스러웠는데, 정작 일본에서는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알기론 음모론 같은 것도 제기되지 않았다. 


와카마츠 코지의 영화는 (구할 수 있는 영화는 모두 봤는데) 보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예전에는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기본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그의 기개가 부러웠다. 에로영화를 만든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처음 2년인가 동안 18편의 핑크영화를 만들어서, 핑크영화의 제왕이라고 불렸다) 사나운 정치영화를 만든다고 거들먹거리지도 않았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그때의 일본영화계가 더 입체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자신들이 추천한 영화 대신 와카마츠 코지의 영화가 영화제 본선에 올랐다고 해서 와카마츠 코지를 비난하던 일본 주류 영화계의 태도에서 어떤 기시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사회가 겉보기엔 예의 바른 듯하지만, 사실은 사람들 사이에서 튀지 않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 늘 공동체 정신을 갖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아닐까 싶은 개인적인 생각을 뒷받침하는 여러 사례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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