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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Nov 05. 2023

서부전선 이상 없다

전쟁의 시대에 다시 보는 반전영화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에드바르트 베르거의 영화 <서부전선 이상 없다>(2022).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원작 소설이 매우 유명한 탓에 영화에 대한 새로움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연출자는 100년 전에 나온 원작의 주제를 잘 살렸다. 스타일도 근사했다. 미화된 전투씬이 아니라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처참한 전투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전쟁은 정말 일어나면 안 된다. 전쟁 때 제일 많이 죽는 사람들은 아이, 노인 등 민간인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간단한다.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 


옛날부터 그런 말이 있었다. 전쟁이란 노인이 일으키고 젊은이가 죽는 것이라고. <서부전선 이상 없다>를 보면, 이 명제가 생각난다. 교사의 선동에 따라 마치 피크닉 가는 것처럼 참전하는 주인공과 친구들. 이들이 전쟁터의 진흙밭에서 구르는 동안, 근사한 식사를 하는 장군들의 대비. 마찬가지로 처참한 전쟁터와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풍경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장군이 휴전 15분을 남기고 병사들에게 최후의 진격을 명하기도 한다.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이 그대로 휴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수백,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실로 어이없는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이제껏 명분 없는 전쟁은 없었지만, 그 명분이 기억나는 전쟁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침략을 당하면 맞서 싸우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침략하는 쪽에서는 도대체 어떤 이유를 갖다 대야 할까? 나는 모르겠다. 어릴 때는 군인이 멋있기도 했고 전쟁이 나면 멋지게 전사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제멋대로 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처음 총을 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부서졌다. 아직도 귀를 먹먹하게 했던 총성과 화약냄새가 기억난다. 그런 것에게 공격당하면 인간의 육신은 산산이 부서지겠구나, 하는 공포만 느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스타일면에서 <1917>, 후반부의 내용면에서는 <고지전>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1917>(샘 멘데스, 2019)과 <고지전>(장훈, 2011)이 생각났다. 아마도 제1차 세계대전을 다뤘다는 점에서 비슷한 미술과 소품, 전투 스타일 때문에 <1917>이 떠올랐을 것 같다. <고지전> 같은 경우에는 휴전을 앞두고 치열하게 싸우다가 휴전 시그널과 함께 죽는 사람들의 모습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원작을 생각하면, 오히려 <고지전>이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원작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죽은 날, "서부전선 아무 이상 없음"이라는 보고가 올라가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래서 알베르 까뮈의 허무한 실존주의가 생각났다면) 영화에서는 <고지전>처럼 좀 더 극적인 결말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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