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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라리스의 바다 Nov 08. 2023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90년대 시네필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이혁래, 2022)를 봤다. 봉준호 감독이 학생 시절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는 <노란문>이라는 모임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을 통해 젊었을 땐 날렵했던 봉준호 감독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저 산 너머>(2020)의 최종태 감독이 노란문의 대표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노란문>에서 보유했던 비디오테이프들. 저런 복사본 비디오테이프는 우리 집 창고에도 한가득 있다. 정기적으로 물 먹는 하마를 넣어주고 있다.

안내상 배우와 우현 배우가 나와, <노란문> 송년회에서 봉준호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 <루킹 포 파라다이스>를 보고 나서 첫 번째 실사영화인 <백색인>에 50만 원을 제작지원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우현 배우는 <살인의 추억>(2003)을 보고 나서, "그때 돈을 더 투자할 걸"하고 후회했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재밌다. 이제는 명감독이 된 이의 과거 모습을,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듣는다는 건 재밌다. 하지만 <노란문>은 봉준호의 과거를 좇는 영화가 아니다. 90년대 시네필에 대한 기록이다. 


90년대는 영화의 시대였다.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비디오 관람문화를 부흥시키고 시네마테크와 예술영화전용관 그리고 영화제를 이끌어냈다.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인 게, 80년대 한미영화협정으로 인해 외국영화의 직배가 결정되고, 이제 한국영화산업은 망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거꾸로 한국영화의 부흥이 시작되었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모두 직배로 들어오니, 다른 배급사들이 그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럽/아시아/미국인디펜던트영화들을 수입해 왔다. 그런 영화들이 소규모 개봉 혹은 비디오를 통해 관객과 만났고, 오히려 사람들은 다양한 영화를 만나면서 영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 진짜 90년대는 그랬다. (물론 불법비디오도 많았지만.)


<노란문>의 단체 사진. 그런데 90년대 동아리 단체사진은 다 이런 느낌이지 않나?

<노란문> 세대와 같은 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노란문>을 보면서 나의 90년대를 떠올리게 되었다. <노란문>의 회원들 중에서 현재 영화일을 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모두가 <노란문>을 통해 영화에 대한 순수한 관심을 표한 뒤,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나는 그것도 좋다. 영화가 사명도 아니고, 모두가 영화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히려 그분들의 멘트에 감동받았다.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영화를 좋아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해 본다. 내가 순수하게 영화를 좋아했던 시절을. 


90년대의 나는 영화를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영화가 재밌어서 영화를 찾아다녔다. 토요일 오후, 사당동 구석에 있는 문화학교 서울에서 푸도푸킨의 <대지>라든지, 데 시카의 <움베르토 디> 같은 영화를 보곤 했다. 이런 영화를 보는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쓸쓸했다. 

동숭시네마텍이 생기고 나서 첫 번째 상영작을 봤던 기억도 난다. 1회 관객에게 오리지널 포스터를 준다고 해서 졸음을 참고 혜화동까지 갔었다. (하지만 그때 그 첫 번째 영화가 <천국보다 낯선>인지 <노스텔지아>인지 헷갈린다) 

제1회 부천국제영화제를 갔다가 <킹덤> 심야상영을 앞두고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나는 바람에 영화를 포기하기도 했다. (어떻게 구한 표인데!) 그 영화제에서 있었던 알렉스 콕스 감독의 GV도 생각난다. 20분쯤 늦게 온 감독님은 술에 취해 있었다. 연신 소주와 곰장어가 최고라고 말했다. 후훗. 기억 난다. 


90년대의 영화 풍경은 이러하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일을 하기 위해 영화를 본다. 영화가 일이 된 것이다. 아니 일하느라 영화를 보지도 못한다. 영화를 하고 싶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말이지. 


<노란문>은 추억에 관한 영화다. 이 작품을 보면서 그 시절을 생각했다. 함께 영화를 보던 이들, 나보다 더 영화를 좋아하던 이들, 명석하고 박식했던 사람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을까? 하지만 편한 추억에만 머물고 싶지는 않다. 언제나 선수로 뛰고 싶다. 후후. 이 정도 욕심은 부릴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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