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I 'See' You
"너를 거둘 수밖에 없게 된 후, 나는 바보같이 10년도 넘는 세월을 바쳤어. 뭘 해도 신경이 쓰였어. 엄마를 잃은 아이니까!"
"...하지만 나도 원해서 함께 있던 건 아니야... 이모가 말했잖아! 우리집 애가 되라고!"
--- 중략 ---
"주자장에서 내가 했던 말 사실 속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냐."
"응!"
"절대 그게 다가 아니야."
[스즈메의 문단속] 이라는 영화에서 스즈메와 이모가 말다툼을 하고 화해를 하는 장면 속 대사다. 영화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얘기하면 스즈메의 엄마는 스즈메가 4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스즈메를 이모가 데려와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 영화에 나오지는 않지만, 대사들로 추측해 보면 스즈메는 사춘기를 맞이했고 (혹은 사춘기가 지나 간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모는 스즈메로 인해 결혼의 실패가 있었던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주변의 보호자들과 꼭 닮은 상황 같아서 영화의 어떤 연출보다 마음에 와닿았다. 강아지에게 많은 시간과 애정을 바치고 있는 보호자들의 마음이리라. 가끔 강아지들 때문에 흘리는 눈물과 끓는 천불을 가라앉히기에 좋은 대사다. 당신의 강아지도 '원해서' 함께 있는 게 아니고, 내 마음도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란걸.
무언가를 가르치려면 전달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니까 뭐라도 소통이 되어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전달'은 열심히 한다. 인간의 언어를 유창하게 전달하는 보호자 A도 있고, 데시벨을 있는 힘껏 끌어올리는 보호자 B도 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없이 기다리는 보호자 C도 있다. 이들의 그다음 단계가 뭔지 아는가? 인간의 언어를 더더욱 유창하게 전달하는 보호자 A가 되고, 엄청난 성량을 내뿜는 보호자 B가 되고, 도를 닦는 보호자 C가 된다. 일방적인 대화는 없다. 예비 신부가 없는 예비 신랑은 없는 것처럼.
당신의 강아지의 말을 듣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보았는가. 유튜브 시청과 책을 읽은 건 제외하자. 왜냐고? 당신의 연애가 책을 통해 이뤄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연애 얘기가 나왔으니 연애 얘기로 접근해 보자. 내 아내는 밥을 참 좋아한다. 소개팅 첫날, 밥을 그렇게 있는 힘껏 떠먹는 사람은 처음 봤다. 내가 말을 걸면 밥이 봉긋한 숟가락을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놓고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걸 보고 내 아내는 밥을 참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물론 면도 좋아한다, 많이!). 내가 처음 만난 그녀를 관찰하고서 알아낸 귀중한 정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당신의 강아지를 관찰했는가 아니면 영상에 뜬 다른 강아지를 보고 내 강아지를 끼워맞추고 있는가. 대충 느낌으로 강아지를 말하는 보호자가 아닌, 내 강아지를 진짜로 말할 수 있는 멋진 보호자가 되는 법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A. 어디서:
잘 돌아다니는 그런 곳들부터 시작하자. 집 안, 집 앞 공원, 사람이 많은 곳, 강아지 운동장 이 정도면 충분할 듯싶다.
B. 어떤 상황을:
일상부터 우연한 상황까지를 목표하자. 예를 들면 '집 안' 에서 '자기 전' 모습, '밥을 먹기 전' 모습, '사람 친구가 놀러 왔을때' 의 모습을 시작으로 '사람 많은 공원' 에서 '아이를 마주쳤을 때' 의 모습, '다른 강아지를 마주쳤을 때' 모습까지.
C. 무엇을:
귀, 눈, 입, 머리의 움직임, 꼬리, 몸 이렇게 6가지 부위를 관찰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와 같다. (아래 내용은 5년 전에 말랑이를 처음 데려오면서 책을 참고하여 정리한 내용인데, 아무리 찾아도 어떤 책인지 모르겠다. 혹시 아는 분이 있다면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Ear(Shape) - F: 귀 전면이 앞을 보고 있고 곧게 서있음; S: 귀 전면이 양옆을 보고 있고 곧게 서있음; SV: 귀가 양옆으로 벌어져 축 쳐짐; BB: 뒤로 넘어간 채 약간 쳐짐; BF: 완전히 뒤로 넘어감.
Eye(Shape) - VW: 똥그랗게 뜸; W: 적당히 똥그랗게 뜸; HC: 반쯤 감김; C: 완전 감김
Eye(Movement) - S: 앞을 곧게 보고 있음; A: 시선 피함; D: 양 옆으로 시선 번갈아 돌림
Mouth(Shape) - C: 완전 닫음; LL: 입술 햝음; AP: 경계 혹은 항복(몸의 움직임으로 판단); FG: 입 크게 으르렁; P: 혀 빠짐; Y: 하울링 자세
Head(Movement) - AB: 몸 위에서 고정; B: 몸과 동일선; BB: 몸 아래
Tail(Shape) - SH: 하늘 높이 솟음; AB: 등 뒤 윗방향으로 뻗음; LB: 등 뒤 몸과 직선 혹은 약간 아래 방향으로 뻗음; FL: 바닥 방향을 향함; BL: 다리 사이로 말림
Tail(Movement) - M: 움직임 없음; C: 원을 그리며 움직임; S: 천천히 쓸듯이 넓게 움직임; F: 짧게 빨리 흔들림; R: 꼬리 끝만 흔들림
Body(Shape) - F: 앞으로 기울어짐; LB: 뒤로 기울어짐; EBT: 앞 뒤 균형있지만 긴장; EBR: 앞 뒤 균형있고 이완상태; C: 엎드림.
모든 행동을 하루에 관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루에 한두개 정도 상황을 관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 된다. 눈에 담기보다는 잘 촬영해두자. 그리고 적어도 서른개의 모습을 잘 담아내자. 경험상 그 정도면 꽤 훌륭하다.
관찰했으니 느낀 점을 써야 한다. 각 모습에 대해 강아지가 어떤 감정이었을지 써보자. 아래의 표를 보면 어떤 식인지 감이 올 것이다. 늘 받는 질문인데, 당연히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귀납적 방법은 불확실성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내 강아지를 오해한 보호자'와 '내 강아지를 모르는 보호자'는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이렇게 정리하고 조금 더 분석적으로 다가가보자. 감정의 결이 비슷한 것끼리 색으로 묶자. 예를 들면, 흥분/경계는 빨간색, 약간의 긴장/호기심/신남은 오렌지색, 즐거움은 노란색, 편안함은 파란색으로. 그리고 다시 정렬해보자.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말랑이가 잘 쓰는 표현을 (얕게나마) 알 수 있다. 말랑이는 입이나 꼬리를 주로 쓰는 표현 방식으로 채택한 것 같다. 흥분도가 높을 때를 기준으로, 입의 모양이 입술을 핥거나 (LL) 완전히 닫고 (C), 꼬리가 바닥을 향해 (FL) 있다면 뭔가 미심쩍은 느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꼬리가 흔들리고 있다면 기분이 좋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신도 아는 얘기로 들리는가? 최근에 본 어떤 영상에서 '호머식 채점' 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방금 푼 문제가 틀렸는데 스스로 합리화 가능한 이유로 틀렸다면 맞았다고 채점하는 경우' 를 뜻한다고 한다. 오늘도 어설프게 이해한 당신의 강아지를 두고 호머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틀릴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키우는 강아지의 말들을 알았다. 그렇다. 틀릴 수 있다. 조금 틀리면 어떤가! 이 과정을 끝낸 당신은 아마 두 가지를 얻을 것이다. 하나는 내 강아지를 이제 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용기 (어설프게 내 강아지를 아는 척하는 트레이너를 비웃을 용기), 두 번째는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보호자가 생긴 강아지.
이렇게 멋지게 작성한 관찰 일지 - 아마 중학교 과학 방학 숙제 이후 처음 하는 - 를 어떻게 쓸 것인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겠다.
활용 1. 내 강아지의 기분에 적절히 대응하기
강아지가 소리만 내면 안 된다고 외치는 당신을 위한 활용 방안이다. 기분이 좋아서 방방거리는 강아지에게 안된다고 외친다면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즐거움이 있을 것인가. 잔뜩 기분이 안 좋아져서 으르렁거리는 강아지를 괜찮다고 쓰다듬는다면 적절한 행동인가. 강아지는 같이 살아 나가는 '반려' 생명체다. 사소한 기분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 틀릴 수 있을지언정- 살아가야 한다. 보호자가 내키는대로 강아지를 해석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활용 2. 교육의 시작점 파악하기
"얘는 남자를 너무 싫어해서 문제예요!"
"남자만 싫어하나요?"
"흠..."
상담을 하면서 많이 나눠본 대화다. 그리고 나의 답변은 항상 이랬다. "정말 남자만 싫어한다면, 교육하는 것이 보호자의 욕심일 수 있어요. 그렇게 특정 개체에 반응한다면 강아지에게 정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을 수 있거든요." 나는 이 부분을 사람의 고소공포증, 선단공포증, 환공포증 정도로 받아들인다. 어딘가에 깊게 각인된 두려움은 덮어도 금세 드러나기 마련이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남자에게 특히 반응이 강하고 여자, 고양이, 새에게도 미약하게나마 반응을 보일 거예요. 그러면 그중에 반응이 약한 것부터 찾아 교육을 해야합니다." Table 2 에서 오렌지색의 영역의 반응부터 수정해야 한다. 잘할 수 있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내 생각에 강아지에게 적용되지 않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아니다. 강아지에게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이고, 보호자에게 실패는 실망의 어머니다.
이모에게 양육되길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스즈메에게 "너를 키웠던 마음에 후회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니야."라고 말하는 이모가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건데 이모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스즈메가 그렇게 내뱉은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진심으로 키웠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내 강아지도 스즈메같이 말하고 싶지 않을까. 나는 이 글을 읽은 보호자들이 각자의 강아지에게 스즈메의 이모처럼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절대 그게 다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