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아파트 같은

생의 마지막 장소

by 구경하

봉안당의 첫인상은 아파트 같았다. 추모관이라고 부르는, 건물 여러 동으로 이루어진 추모시설은 아파트 단지를 연상시켰다. 추모관 안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투명한 유리문이 달린 봉안단으로 채워져 있었다.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 안을 제각기 취향대로 가꾸며 살았던 것처럼, 봉안단 속 고인들의 마지막 장소 풍경도 그러했다.


직원이 건넨 브로슈어에는 사용료가 한눈에 볼 수 있게 표로 나와 있었다. 추모관의 위치와 봉안단의 크기, 높이에 따라 사용료는 60배 이상 차이가 났다.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는 실내 봉안단이 실외보다 가격이 높았다. 시설이 저가형, 일반형, 특별형인지에 따라 가격은 달랐고, 안치할 유골함의 수에 따라 관리비가 추가로 부과됐다.


갑작스럽게 상을 당해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나는 봉안단 사용료가 단의 높이별로 차이가 큰 게 의아했다. 화장된 고인들에게 일조권이나 조망권이 필요하지 않을 텐데 중간단의 가격은 맨 위나 맨 아래단의 2배 수준이었다. 추모관 내부를 돌아보면서 비로소 나는 이 가격이 고인이 아니라 추모객을 기준으로 책정됐다는 걸 알아챘다. 추모객이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는 봉안단의 가격이 가장 높았다. 아무렴 수요는 살아있는 자들의 열망이다.


봉안단은 곳곳에 빈자리가 있었다. 그중에는 '예약'이라는 팻말이 놓인 자리도 있었다. 묫자리를 미리 보아두던 풍습처럼, 교회가 운영하는 추모시설에 교인이 자신의 마지막 장소를 미리 마련해 둔 것 같았다. 어느 봉안단은 통째로 한 교회 이름이 걸려 있기도 했다. 믿음의 공동체는 사후에도 서로 가까운 곳에 모여있기로 약속한 듯했다.


당시 나는 아파트 계약을 해본 경험이 없었는데도, 추모시설 이용 계약이 아파트 거래와 닮아 보였다. 추모시설은 완공에 앞서 선분양으로 공사비를 조달했고, 봉안당의 위치와 높이에 따라 가격대를 다르게 매겼다. 교인이 아니어도 그곳을 이용할 수 있지만 교인이면 할인 혜택을 받아 조금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조합원 분양가와 일반 분양가가 다르듯 말이다.


봉안당에서 아파트를 떠올린 건 나만이 아니었다. 그 후에 지인이 갑작스럽게 부친상을 당한 일이 있었다. 외동이던 지인은 해외에서 전해진 아버지의 별세 소식에 장지를 미처 챙기지 못하고 있었다. 고인이 국가유공자라고 들은 적이 있어서 현충원에 안장할 자격이 되시는 것 같아 내가 절차를 알려줬었다. 그렇게 장례를 치른 지인은 내게 답례 인사를 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번듯한 아파트에서 사는 게 평생 꿈이셨던 아버지를 아파트처럼 생긴 봉안당으로 모시면서, 가시는 길 마지막 꿈을 이루게 해 드린 것 같아 고마웠다”고.


아파트를 닮은 추모시설을 사실 엄마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다니던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보니 생전에 가보셨다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추모시설의 존재를 우리는 그래서 알게 되었고, 갑자기 상을 당했을 때 생각나는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 당신이 바라던 장소에서 영면하셨으면 좋았겠지만, 엄마가 다른 곳을 정해 두셨던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엄마는 육신을 남겨둘 마지막 자리를 미리 정해둘 나이가 아니었다.


우리는 아파트에서 평생을 살아가다가, 삶의 끝에서도 아파트를 닮은 추모시설로 간다. 장지로 자연장을 선호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아직은 시설과 운영이 충분하지 못하다. 현실적인 이유로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을 받아들였듯, 삶의 마지막 장소 역시 현실의 제약 속에 타협한 방식으로 마련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소의 의미를 만드는 건 신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의 몫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자신의 의지로 삶을 계획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고 요구받는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 삶의 진실은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의 조건이라는 점이다. 때로는 닥쳐오는 일들을 도리 없이 받아들이며 현실에서 허락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예고 없이 다가오는 상실이 서럽지 않다면 거짓일 것이다. 다만 고비를 넘을 때면 남은 인생을 겸허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배우게 된다. 인생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게 될수록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고, 무탈한 일상의 소중함에 눈을 뜨게 된다.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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