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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유동하는 광장

도시에서 광장이 존재하는 방식

by 구경하 Mar 07. 2025

서구 도시의 광장은 좀 다를까. ‘혁명의 수도’ 파리의 국회의사당과 광장에 대해 퍼플렉시티에 물어보니, 프랑스 하원이 있는 부르봉 궁전과 550미터 떨어진 콩코르드 광장을 소개해준다. 콩코르드 광장은 프랑스 대혁명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로, 180년 넘게 아스팔트로 깔려 있다.


마침 국회에 산책 간 동료 중 하나는 파리 특파원을 다녀왔다. 특파원 근무에 대학원까지 3년여를 프랑스에 체류한 Y에게 광장에 대해 물었다. 콩코르드 광장은 정부의 연금개혁 반대 집회를 비롯해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곳이지만, 의회 앞이라는 느낌은 아니었다고 했다. 궁전이다 보니 광장과 거리감이 있다는 거다. 또, 경찰이 미신고 집회는 강경 진압하기 때문에 의회 근처에서는 집회가 자주 열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 온 지인이 2년 전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가 보수 유튜버들의 점거 시위를 보고 도리어 놀라워했다는 일화를 덧붙였다. 한국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와 공영방송 건물 안에서도 집회가 가능한지 오히려 되물었다는 것이다.


광장의 존재 양상


광장에 대한 자료를 읽다 보면,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도시에서 광장의 위상에 대한 얘기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도시 광장이 ‘시민 민주주의의 이상적 공간’이라는 통념에 대해, 김백영은 추상적, 낭만적 인식이라고 지적한다.[1] 현대 도시에서 광장은 다중이 다양한 용도로 이용하는 다차원적인 오픈 스페이스일 뿐, 광장의 본질적 규범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광장의 기능과 형태는 “특정한 역사적 시기,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우리 역사를 거슬러봐도 광장의 기능은 사회적으로 존재했지만, 그 물리적 형태가 항상 광장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광장이 없었지만, 광화문 육조거리와 종각 일대가 전통적으로 왕과 백성이 소통하는 광장의 역할을 했다.[1] 반면, 일제강점기에는 경성부 최초의 광장으로 조선은행 앞에 선은전 광장이 만들어졌지만 실제 이용은 도로에 가까웠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학생운동과 유신반대운동, 1987년 민주화운동 같은 군중들의 집회와 시위는 대부분 서울역-종로-명동의 도로 위에서 가두시위 방식으로 전개됐다.


광장의 발견


더욱이 1997년 여의도 광장을 공원으로 전환하는 공사에 들어가면서 서울은 한동안 ‘광장 없는 도시’였다. 이듬해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서울시로부터 첫 보고를 받으면서 “광장 없는 도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라고 질책했다.[2] “1천만 시민이 살고 있는 수도 서울에 내려준 ‘하늘의 선물’인 광장을 걷어낸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공원 개장이 임박한 시점에도 “신중했어야 했다”라고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여의도 광장은 사라졌지만, 역설적으로 광장의 부재는 서울광장을 실현시켰다. 서울광장은 1995년 이미 계획되어 있었지만 교통 체증에 대한 우려로 추진되지 못한 상태였다.[3]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은 시청 앞을 서울의 상징 공간으로 세계에 각인시키면서 도시 광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 서울광장 조성으로 개편된 교통 체계도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잇따라 광화문 광장의 조성이 동력을 얻게 되었다. “실체적인 광장은 없으면서도 거리를 광장으로 만드는 능력과 광장의 정신으로 가득 찬 신기한 사회”[4]는 도시 안에서 광장을 찾아냈다.


서울시청 앞 응원전 모습. ⓒ서울시서울시청 앞 응원전 모습. ⓒ서울시


광장을 둘러싼 긴장


그런데 광장이 조성되었다고 해서 기능과 형태의 불일치가 모두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공간이 있어도 시민이 자유롭게 접근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공간이 아니라면 진정한 광장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광장에 놓인 시설물들은 조성 직후부터 정치적 의사 표현을 위한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려는 의도라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의 광장 문화는 역사적으로 강한 정치성을 띠는데 [1], 서울시는 서울광장과 광화문 광장에 대해 녹지 보존 등을 이유로 대규모 시위 장소로 이용될 가능성을 차단하는데 대비했다.[3] 서울광장에는 도심 쉼터 역할을 하는 잔디 광장이라는 조성 목적을 이유로 시위 사전 허가제도를 도입했다.[5] 광화문 광장은 역사문화 공간이라는 조성 목적에도, 개장 직전 꽃 22만 송이가 들어간 플라워 카펫을 설치하거나 스노보드 대회를 개최해 시설물로 광장을 채웠다.


각종 시설물들은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리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2016년과 2017년 광화문 광장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23차례 진행됐다. 최대 170만 명의 군중이 광장 일대에 모였는데, 당시의 광장 형태는 남쪽 교차로에서 유입되는 군중이 무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유일한 통로가 이순신 동상 부근이어서 병목 현상을 유발했다. 안전울타리로 사용된 석조 화분은 보행을 방해하고 광장 안 군중의 밀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파악됐다.[6] 여기에 군중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무대나 스크린, 서명대 등 시설물의 배치와 조형물은 보행을 저해하고 혼잡을 유발했다.


광장을 운영하는 제도 또한 광장의 기능을 제약하는 요소로 지적된다. 조례 개정 운동을 통해 서울광장의 허가제는 신고제로 바뀌었지만, 서울시는 성적 소수자들의 퀴어 축제 개최 신청을 불허했다. 시민단체는 이 같은 서울시의 광장 운영이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7]


유동하는 광장


광장이 유동화된 양상인 행진은 정치적 의사표현을 위한 공공공간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2016년 촛불집회에서 경찰은 교통을 이유로 율곡로 행진을 제한했는데, 법원은 이를 청와대로부터 800미터까지 허용했다. 이어 촛불집회가 비폭력 평화시위로 진행되면서, 법원은 청와대로부터 400미터, 200미터, 100미터까지 행진 거리를 허용했다.


이러한 기준은 다른 정부청사 근처 집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부터 100미터 거리에 대해 집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2018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사당 100미터 이내에서 집회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에 대해 위헌으로 결정했다.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집회의 자유는 필수적인 구성 요소이기 때문에 집회의 장소를 제한하는 것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취지이다.[8] 최근 3.1절에 열린 탄핵 반대 집회도 경찰의 행진 금지 통고에 대해 법원이 집행정지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국회 경계로부터 100미터 이내에서 행진이 진행됐다.


이처럼 현실에서 광장은 물리적 형태와 기능, 제도, 저항 방식 등 다양한 요소의 상호 작용으로 구성된다. 도시에서 광장은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고, 때로는 유동하거나 확장되며, 장소 없이 출현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1] 김백영 2018, “육백 년 고도 서울의 광장문화에 대한 회고적 성찰”, <공공의 리듬, 공동의 몸 : 공동체 아카이브> 도록, 일민미술관.

[2] 동아일보, 여의도 공원화사업 DJ  “신중했어야”, 1998년 4월 30일 자

[3] 안진희·배정한 2016, “광장에 대한 공론의 생성과 공간적 반영-여의도공원, 서울광장, 광화문광장을 대상으로”, 한국도시설계학회지, 17권 6호.

[4] 김진애 2017, “광장은 드디어 ‘광장’이 되었다!”, 환경논총, 59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5] 김원태 2022, “광장 의미의 재조명과 서울광장 등 통합 운영방안 필요”, 예산과 정책, 42호,  서울특별시의회.

[6] 하재영·김세훈 2017, “대규모 광장 집회에서 발생하는 군중의 혼잡 양상에 대한 고찰-광화문 광장 촛불집회를 대상으로”, 한국도시설계학회지, 18권 6호.

[7] 한겨레, “서울시의 서울광장 집회 제한은 부당” 시민단체 소송 제기, 2024년 12월 23일 자

[8]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2025.2,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 422회 국회 1차 행정안전위원회.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2020년 개정된 집시법은 국회의사당, 법원, 헌법재판소, 국무총리 공관은 대규모 집회 또는 시위로 확산될 우려가 없는 경우 등에 대해서는 집회·시위의 금지 장소에 해당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100 활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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