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공간의 물리적 조건 (2)
탄핵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이번 주말 광화문에서는 (바라건대, 마지막) 촛불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9년 전과 달리 광장은 양분됐고, 세력이 대결하는 양상을 보인다. 작은 불씨에도 폭발할까 두려운, 유증기가 가득 찬 듯한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다만 믿는 구석은 광장에 나선 마음들이 절박하다고 해서 광장에서 물리적 충돌이나 폭력 사태가 빚어진 일은 없었다는 사실이다. 광화문 광장의 집회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결집해도 비장하기는커녕 축제처럼 진행되어 왔다. 촛불집회가 세계의 이목을 끈 이유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에 더해 성숙한 시민 의식 덕분이다.
정치적 격변기 한국의 광장 문화는 스펙터클 그 자체다. 2008년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촛불 소녀’로 불린 청소년과 유모차 부대로 대표되는, 운동권을 벗어난 새로운 정치 주체가 등장했다.[1] 2016년부터는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문화계 인사들이 참여하며, 창의적인 문화제 형식의 집회가 마련됐다. 헌정사상 최대인 170만 명의 시민들은 한겨울 광장에서 촛불 파도타기를 하며 뜨거운 민심을 장대한 이미지로 시각화했고, 비폭력 평화 집회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정권 퇴진을 이끌어냈다.
2024년에는 K팝에 맞춰 응원봉을 흔들고 위트 넘치는 깃발로 유쾌하게 저항하는 방식으로 다시 진화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시민들이 참가자를 위해 카페에 선결제를 하며 지지 의사를 밝히거나, 참가자들이 방한용품과 시위 물품을 나누며 연대하는 모습도 새로운 현상이다. 이 같은 광장의 모습은 동원하거나 연출할 수 없고, 현장에서 온몸으로 감각하는 강렬한 경험이어서 다양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그런데 강준만은 이런 스펙터클한 집회 경험은 서울에서만 가능하다고 분석한다.[2] 서울의 높은 인구 밀도와 중앙 언론사의 집중, 쾌적한 광장 환경이 이런 광장 문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근현대사의 주요 시위는 지방에서 먼저 일어났지만, 최종적으로 그 힘은 서울에서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김형국의 '서울 민주화 선봉장론'을 빌려온다.
민주화는 역사적으로 도시화의 산물이었다. 18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부를 축적한 도시의 시민들이 민주화도 아울러 요구한 것이 서구 민주주의의 발단이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는 커뮤니케이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소인 까닭에 시위의 동기를 시민들에게 일시에 알릴 수 있고 또한 시위를 순식간에 조직할 수 있는 입지적 이점이 있다.
현대에 들어와 그 정치적 시위의 입지적 이점이 서울에서 가장 큰 것은 당연했다.
민주화의 성취 면에서는 서울의 공덕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도시화의 고조가 민주화를 이루는 데 촉매가 되었다는 말이다.
-김형국, '나의 서울살이 30년' 중에서[3]
강준만은 “청계광장이나 시청광장을 떠나는 순간 촛불은 죽게 돼 있다”고 단언할 정도로, 스펙터클로서 광장의 경험은 도시 환경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2008년 촛불집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계엄 시국의 광장을 관찰하는데도 유용하다.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린 정치 공간들은 서울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이다. 광화문 일대와 여의도는 서울 3대 도심으로, 주간 생활인구는 각각 66만 명, 22만 명에 이른다.[4] 평일에도 퇴근길 시민들이 집결해 대규모 집회를 열 수 있을 만큼 서울 도심은 유동인구가 풍부하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1차 탄핵소추안 부결 이후 2차 계엄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자, 여의도에서는 평일 저녁 국회 앞에 갑자기 집회가 열리곤 했다. 윤 대통령의 구속이 취소된 날에도 광화문 광장에는 예정에 없던 긴급집회가 개최됐다. 1987년 6월 항쟁에서 기폭제가 된 ‘넥타이 부대’가 서울 시청과 명동 일대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서울 도심의 광장들은 광역교통의 중심지여서 다른 지역 시민들의 유입에도 유리하다. 지난해 12월 7일 1차 탄핵소추안 표결 당시 국회 앞에 모인 생활인구는 절반 이상이 서울 외 거주자였다는 분석도 있다.[5] 격변기에는 지역 거점에서도 집회가 열리지만, 스펙터클한 집회를 경험하기 위해 ‘원정 집회’를 오기에도 교통 중심인 서울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서울 도심의 광장 배치 또한 대규모 인파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 구조다. 광화문 광장에서 청계광장, 서울광장, 서울역 광장이 이어지는 서울 도심은 하나의 광활한 광장처럼 기능한다.
정권 퇴진이 구호로 나오는 집회에는 폭넓은 스펙트럼의 정치 세력들이 동시에 참여하는데, 이들은 상충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다만 이들은 작은 광장 역할을 하는 지하철 역이나 교차로 등에서 사전 집회를 열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 다음, 광화문 광장의 본 집회에 참석한다. 도심 일대의 광장 공간은 무정부주의에서부터 극우까지 담아낼 정도로 충분히 넓다.
숭례문과 을지로, 종로, 율곡로, 사직로 등 간선도로는 개별 단체의 행진에 이용되며 광화문 광장에 밀집한 군중을 분산하는데 유리하다.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서울지하철 1호선, 2호선, 3호선, 5호선 역들은 군중이 광장에 진출입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제공한다.
스펙터클을 증폭시키는 미디어의 효과는 한국 언론의 서울 중심성으로 더욱 극대화된다. 전국 단위의 언론사 본사는 모두 서울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광화문 일대에는 방송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광화문 광장과 서울 광장 인근 정부 기관에는 방송 송출 시설과 취재 지원 공간이 있다. 프레스센터에는 언론 유관단체와 외신기자클럽이 입주해 있는데, 집회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부감을 촬영하기에도 좋은 위치다. 국내 파견된 해외 언론이 실시간으로 소식을 세계에 전하기에 광화문은 최적의 입지다.
여기에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제도 언론 없이도 중계할 수 있게 됐다. 대표적으로 유튜브의 라이브 스트리밍은 2016년 촛불집회 당시에는 도입 초기였는데, 이제 대중화되면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광장 안 어디서나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무대를 볼 수 있게 되면서 무대와 스크린 주변 군중 과밀에 따른 위험도 낮아졌다.
스펙터클한 집회가 가능했던 물리적 조건은 서울 도심 밖 집회처럼 보이는 남태령 집회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21일 동짓날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트랙터 시위대는 농업 4법에 대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에 항의하며 상경 투쟁을 벌이다 경찰의 저지로 남태령에서 고립됐다. 그런데 광화문 집회에서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응원봉을 든 집회 참가자들이 이동해 아스팔트 위에서 농민들과 함께 밤샘 농성에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열린 무박 2일의 집회는 광화문 집회와 같이 K팝 부르기와 시민들의 자유 발언으로 진행됐는데, 유튜브로 현장이 실시간 중계되며 참가자가 계속 늘었고,[6] 경찰은 결국 28시간 만에 봉쇄를 풀고 트랙터의 용산행을 허용했다. 남태령역은 서울에서 가장 승하차 인원이 적은 역 가운데 하나지만, 버스 운행이 차단된 곳에서 도심의 군중이 대거 집결할 수 있었던 건 저렴한 대중교통수단인 지하철의 위력이었다.
양방향 고립된 도로에서 스펙터클한 광장이 우연히 펼쳐지면서 집회의 극적 효과와 참가자들이 느낀 연대의 감동은 배가됐다.
어쩌면 오늘 밤, 그리고 그 이후에라도 서부지법 폭동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상상조차 두렵다.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직접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늘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시민들이 광장에 나서기 전에 정치권은 갈등을 조정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 제도화해야 한다. 시민들이 생업과 일상을 포기하고 한겨울에 아스팔트 위에서 구호를 외쳐야 하는 건 분명 소망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다만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기본권이 침해당하는 순간 주권자들이 직접 나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광장 정치는 제도 정치를 견제하며 민주주의를 이끌어왔고, 공론장의 물리적 형태로서 광장에 대한 요구는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 시민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연대의 마음을 확인하며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경험은 특정한 물리적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권력 가까이에 있고, 시민 참여로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역사와 자부심이 새겨져 있고, 누구나 비교적 편리하게 접근해서, 뜨겁게 즐길 수 있는 광장을 위한 물리적 조건은 서울에 있다.
더 나은 정치, 더 좋은 민주주의를 위한 광장이
서울이 아닌 도시에서 과연 가능할까.
*참고문헌
[1] 황진태·박배균 2018, “2016년 촛불집회시위의 공간성에 관한 고찰”, 공간과 사회, 28권 3호.
[2] 강준만 2008, “‘스펙터클’로서의 촛불시위”, 인물과 사상, 124권.
[3] 김형국 1995, "나의 서울살이 30년", 계간 사상, 7권 4호, 사회과학원.
[4] 서울연구원 2024, 서울시 중심지체계 진단과 재편방향 연구.
[5] 이데일리, 데이터 인사이트-7일 여의도 탄핵집회 37만 명, 불꽃축제 인파 수준과 유사, 2024년 12월 12일.
[6] 한겨레, 기고-응원봉 물결친 남태령의 밤…난 농사를 더 열심히 짓기로 했다, 2024년 12월 25일.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100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