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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삶공부 Aug 24. 2021

정리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 읽는 것을 점 점 좋아하게 될수록 책은 내게 갈수록 애물단지가 되어 갔습니다.

집에서 책이 차지하는 공간이 점 점 커져갔습니다. 책이 주인인지 내가 주인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깔끔하고 분위기 있게 집 꾸미는 걸 좋아하는데, 내 취향에 맞추어 집을 정리하는 것도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책이 점 점 많이 쌓일수록 이 책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더 쌓이기 시작했어요. 이런 속도로 책이 많아지면 몇 년 안 가서 이 책이 우리 집 전체를 차지하게 될까 봐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이런 공간에서 살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 일을 어쩌지?


'책을 팔아볼까?'

‘책 파는 방법이 있긴 있을 거야. 인터넷 중고서점의 책들이 어디서 오는 걸까?’


최소한의 상식에도 관심 두지 않고 살았던 제가 갑자기 책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사천리로 유튜브 검색해서 정보를 알아내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산다는 사실과 그 책을 서점에서 대신 팔아준다는 것이었습니다. 팔 책을 서점에서 받으면 제 통장으로 돈이 바로 입금된다는 사실도요. 방법도 정말 간단했습니다.  


‘이렇게 쉬운 걸 왜 안 하고 있었을까?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책에 집착하며 내가 구입한 모든 책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었을까?’





책을 늦게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엄만 글도 모르시는 분이시거든요. 딸에게 책 읽는 습관을 길러주는 건 생각조차 못했겠지요. 고등학교까지는 시골에서 공부하느라 책이 뭔지 몰랐습니다. 대학생 되니까 주위에 다른 친구들의 책 읽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부러웠습니다. 그때부터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 돈도 없던 나이인데도 돈이 생길 때마다 책을 샀습니다. 폼으로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것처럼 들고 다닌 거지요. 독서력은 당연히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책이 좋아지는 지도 배울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책만 자꾸 사 모으는 습관이 생긴 것 같습니다. 교사가 되어서도 여전히 전 독서문맹자였습니다. 책이 진짜 좋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의 권수만 채우는 독서를 하고 살았던 거지요. 책이 쌓이는 것을 마치 내가 책을 많이 읽은 것으로 착각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40대쯤에야 독서토론을 만났고 그런 계기로 책이 진짜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나도 책이 좋아서 책을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책 사는 것에 떳떳해 지니까 책 사 모으는 것이 얼마나 신나고 내 만족이 되는 일이었던지요. 서가가 하나씩 늘어나고 책이 서가에 예쁘게 진열이 되고……. 보기만 해도 뿌듯했습니다. 책이 점 점 쌓여갔고 나도 모르게 이런 지경까지 된 줄을 정리를 시작하면서 알아차리게 됩니다.




갓난쟁이 배고파서 울다가 엄마젖 실컷 먹고는 배가 부르면 자기가 알아서 그만 빨잖아요. 제가 마치 갓난아기 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나이 되어서야 그렇게 악착같이 사 모았던 책을 떠나보낼 수 있겠다는 허락이 됩니다. 책 읽고 싶으면 언제든 읽을 수 있으니까, 사서라도 읽으면 되니까, 쌓여있던 책에 대한 미련이 없어집니다. 배고프면 언제든 엄마 찾아 엄마젖 빨면 된다는 믿음 같은 것 말입니다.




정리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정리를 시작하니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정말 의미 있겠다는 나름의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더 가속도가 붙게 되었습니다.



1. "나도 다시 미니멀라이프로 살 수 있겠다!"


책이 모두 정리된 나의 집! 한 결 가벼워지고 넓어진 나의 집을 상상해 봅니다. 책에 쌓여서 보이지 않던 집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날 것입니다. 깔끔하게 정리되고 분위기 있는 나의 집!


책 때문에 평생 미니멀 라이프는 생각도 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는데 다시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학 며칠 안 남았는데 얼른 서둘러서 책 정리를 마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책이 들어와도 또 정리해서 팔면 되니까 계속 나의 책장에는 내가 진짜 아끼는 책만 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내가 찾는 그 책이 당장 없어도 괜찮습니다. 책과도 인연인데, 보고 싶으면 빌리면 되고 도서관에 없으면 사면되는 걸. 이렇게 생각하니 책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편안합니다. 또 좋은 주인 만나서 사랑받을 텐데…….




2. “이게 나눔인 거구나!”


혼자 좋은 책 움켜쥐고 있는 욕심쟁이 었습니다. 나도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가끔 싼 책 살 때는 얼마나 기분 좋았는데. 나도 기꺼이 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성껏 줄 그은 것도 지우고 접어둔 곳도 펼치면서 다듬어 보았습니다. 이왕이면 내 책을 받았을 때 기분 좋은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 책 읽을 때는 더 아껴서 읽고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엔 주로 최근 나온 책을 읽으니까 도서관에는 없는 책들이 대부분입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굳이 사지는 않거든요. 내가 먼저 비싼 책 사서 새 책처럼 읽고 팔면 중고책 산 사람도 새 책 산 느낌으로 기분 좋게 읽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물론 책 판 값으로 돈을 받지만 돈에 비해 더 좋은 책을 누군가에게 주면 그게 바로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누군가 나의 책을 읽을 사람을 위해 책을 좀 더 아껴서 봐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3. “지구를 살리는 일을 하는 거구나!”


자연을 아끼는 일이구나. 물자를 아끼는 일이구나. 나무를 더 많이 베지 않아도 되는 일이구나. 아껴 써서 재활용하는 일이구나. 결국 지구를 살리는 일이구나.

이렇게 생각되니까 내가 하는 이 일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이미 자연이 심각하게 오염되어서 여기서 지구를 살려내지 못하면 2050년에는 거주 불가능한 지구가 되고 만다는데, 이 일이 바로 지구를 살려내는 일이었구나 싶으니까 자부심이 듭니다. 이 일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더 열심히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4. “돈까지 저절로 들어오는 일이구나!”

저절로 들어온다니까 아무런 노력을 안 한다는 뜻은 아니고요. 노력한 것에 비해서 더 쉽게 돈이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지금 파는 책들은 내가 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읽었기 때문에 연필로 줄 그은 곳이랑 형광펜 사용한 곳이 비교적 많아요. 다음부터 읽을 책들은 그런 표시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할 생각입니다. 그럴 경우 읽고 바로 팔면 되니까 거의 공짜로 들어오는 돈이나 마찬가지잖아요. 알고 보면 다른 사람들을 돕는 대가로 들어오는 돈인 거지요.


어제 팔 책을 정해서 정리해 놓았습니다. 23권에 87300원의 이익이 생기더라고요. 그대로 두고 인터넷 서점에서 책 살 때 사용할 수도 있고 통장에 바로 입금해도 된답니다. 전 통장에 입금했다가 내가 아낀 돈이니까 또 잘 투자해 볼 거예요. 이번 책 모두 다 정리되면 얼마나 큰(^^) 돈이 생길지도 사뭇 기대가 됩니다.






이제까지는 버려야 하는 것이 정리인 줄 알고 정리 못하고 꼭 꼭 움켜쥐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책은 더 놓아주지 못했습니다. 정리가 나눔이고 누군가에겐 도움이고 그리고 무엇을 지켜주는 일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대가로 자연스럽게 돈으로 환산되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정리의 개념을 다시 곱씹어 봐야겠습니다. 특히 그 움켜쥠 속에 놓지 못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것이 떠난 허전함을 채울 무엇이 없을까 봐 미리 겁나서 못 놓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비워두어야 새로운 무엇이 들어올 수 있잖아요. 정리하니까 비로소 이런 것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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