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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삶공부 Sep 25. 2021

보험 뒤에 숨어버린 인지상정

마음 블랙박스 영상은 어떻게 변명하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끝 차선에서 운전하며 가고 있었다.

갑자기 퍽 소리가 났다. 순간 교통사고임을 감지했다.

부딪힌 충격인지 속력이 저절로 낮추어졌다. 차를 세웠다.

무슨 일일까 싶어 차문을 열려니 삐그덕 소리가 났다.

차 문이 잘 열리지가 않았다. 제법 세게 부딪힌 모양이다.

백미러는 박살이 난 채 구겨져 있었다.


겨우 차 밖으로 나왔다.

내 차의 처참한 외형이 눈에 들어왔다.

운전석 쪽의 문짝 두 개랑 뒷 범퍼까지 사정없이 구겨져 있었다.

특히 운전석 쪽 문이 더 심했다.

조금만 더 속도가 나서 힘이 가해졌더라면 어땠을까?

운전석을 박차고 상대차가 들어왔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오싹했다.





저 뒤쪽에서 남자 한 분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대편 운전자였다. 몸은 괜찮으냐고 여러 번 물었다. 나도 이제야 내 몸이 괜찮은지 살폈다. 다행히 내 몸은 멀쩡했다. 남자분에게도 다친 곳 없는지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두 사람 다 괜찮으면 됐다 싶었다.


다짜고짜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했다. 자기가 무조건 모두 잘못했단다. 공사하는 것 마치고 부산으로 가는 길이었단다. 네비도 안 켰나 보다. 부산 가는 길 몰라서 직진하고 있는데 멀리서  부산 가는 길 같은 길이 보이더란다. 순간 저 길이다 싶어서 차를 바로 꺾어 넣었단다. 내 차를 못 보았단다. 부산 가는 길은 먼 쪽에 있었으니까 가까이서 오고 있었던 내 차는 눈에 안 들어왔나 보다. 상대편 차도 앞 범퍼가 다 망가져 있었다. 진짜 세게 부딪힌 모양이다.


운전자가 먼저 보험사에 연락을 했고 나도 내 보험사에 연락을 했다. 상대편 보험사에서 사람이 나왔다. 사진을 찍으면서 자꾸 내게 괜찮냐고 물었다. 세게 부딪혔다는 말인가? 우리 편에서도 사람이 왔고 사진을 찍었다. 찌그러진 차를 보더니 큰일 날 뻔했다면서 나를 보고 진짜 괜찮은지 물었다. 진짜 괜찮다니까 사람 괜찮아서 정말 다행이라면서 부딪힌 부분을 봐도 상대 책임 100% 맞다면서 병원도 가고 그러라고 했다. 정비공장에 차를 맡기고 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까 몸 안 다친 게 더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조금이라도 놀란 근육이 있다면 빨리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잘 의식 못하지만 마음도 놀랐을까 봐 마음 진정도 시킬 겸 맨발 걷기를 두 시간이나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자고 나도 평소처럼 개운하면 아무 이상 없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이 정말 이상무였다.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하게 생각되던지!


상대편 운전자가 걱정할까 봐 문자로 안부를 전했다. 몸 진짜 안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정성을 들여서 기도하면서 운동을 한 이야기, 지금까지는 이상 없다는 이야기들을 알려 드리면서 건강 괜찮은지도 다시 물었다. 답장이 없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전화를 안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 보험사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대편 운전자의 말이 바뀌고 있단다. 두 차 모두 블랙박스 없는 것을 이용하는 것 같은 눈치란다. 제시하는 조건이 달라졌단다. 다 해 주겠다고 해 놓고서는 이제는 병원 안 간다는 조건으로 차만 100% 수리해 주겠단다. 안 그러면 안 되겠다고 한단다. 화가 슬 슬 올라왔다. 서운도 했다. 왜 전화도 안 받고 문자에 답장도 없는 걸까? 그렇게 크게 사고를 내놓고는 상대편 건강이 걱정도 안 되는지 그게 더 이해가 안 되었다.


‘몸 안 좋으면 병원도 갈 수도 있고, 차도 수리하고, 당연히 100% 책임진다고 말해 놓고는……. 일부러 병원 갈 나도 아닌데…….’

‘왜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거지?’

안 아프던 몸이 아플 것 같은 마음까지 들었다.



블랙박스 없으면 증거 입증이 안 된다니까 100% 책임 안 져도 된다고 누가 그런 형편없는 조언을 해 주었을까? 그런 양심 없는 자의 소리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싶었는데 잘 못 본 것일까? 블랙박스 없어도 자기 마음이 보고 있었을 텐데, 마음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은 더 정확한데 그건 어떻게 변명하려는 거지?


사고를 낸 분에게 다시 문자를 넣었다. 통화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내도 읽고는 답장도 없었다. 무슨 마음인지 진실을 듣고 싶었다. 블랙박스 없는 걸 이용해 먹는 건지, 그런 마음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랬다는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전화를 안 받아도 전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 보험사에서는 그 사람 나쁜 사람 같다면서 경찰서 신고하고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자고 했다. 선생님만 괜찮다면 돕겠다고 했다. 사실 그러고 싶은 마음까지 잠깐 올라왔다. 생각할수록 너무 괘씸했다. 사람이면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도 상대를 다치게 하면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지……. 기분이 참 씁쓸했다.







보험은 사람의 마음까지 숨겨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 텐데…….

보험 뒤에 어떻게 살짝, 이런 마음까지 숨을 생각을 했는지…….

꼭 꼭 숨어도 다 보여도 모른 체 하는 게 좋단다.


교통사고 후유증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고 그래서 감사했다.

다른 후유증이 생긴 것 같다. 마음 후유증이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다.

인지상정마저 주고받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이 허함이 더한 후유증이다.


이 후유증에서도 얼른 벗어나야겠지?

그래야 진짜 아무 이상 없는 거니까.

용서와 이해, 사랑의 미덕 한 알씩 처방받아먹으면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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