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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삶공부 Oct 05. 2021

일상 대화가 이렇게 훌륭한 인문학이라니!


“엄마, 엄마는 하는 일이 힘들 때 어떻게 해요?”

“응, 엄마는 힘들어도 하는 일을 그냥 하지.”

“엄마, 난 힘들면 베란다에 가서 하늘을 봐요. 하늘을 보면 힘들던 마음이 싹 사라지거든요.”


“그럼 우리 지금 베란다로 갈까?”


베란다에 둘이서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답니다.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랍니다.  

엄마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들, 왜? 힘든 일이 있었어?”

“아니야. 엄마. 지금 이 눈물은 힘들어서 흐르는 슬픈 눈물이 아니야. 

하늘을 보니까 하늘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해서 흐르는 눈물이야."



이런 대화를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와 엄마가 나눴답니다.

이 대화를 전화상으로 전해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 이야기에 가슴이 너무나 뜨거워져서 감동받아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그 어떤 위대한 인문학 책 보다 더 깊이 있는 깨달음과 울림을 주는 스토리였습니다.


“어머니 이게 바로 인문학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저절로 이 말이 튀어나오더라고요. 감탄사 가득 담은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이끌어 주시는 어머니가 너무 위대해 보였습니다. 아무런 의도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했을 겁니다. 아이의 마음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을 테지요! 온 정성으로 돕고 싶었을 겁니다. 그 마음이 베란다로 둘을 이끌었을 겁니다. 일상의 대화가 이렇게 인문학적 대화로 승화되어 진행되었던 것이고요. 하늘의 별을 보듯 이렇게 영롱하게 제 마음에 파고드는 이야기로 들려왔던 것입니다. 






“선생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수준 있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지난주에 어머님들과 독서토론을 하면서 나눈 질문입니다. 인문학이 더 중요해졌다고 하고 갈수록 인문학이 더 중요해질지는 정확하게 알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책 읽고 하브루타 하는 것 같은 특별한 장을 펼치지 않고도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각을 나누는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게 정말로 고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가 더 많이 말하게 하면 안 될까요? 아이가 말하는 걸 그냥 잘 들어주면 어떨까요?”

제 생각은 이랬습니다. 자녀와 이야기할 때 우리는 많은 의도를 가지고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에 한 점 의도도 없이 아이의 말에 온전히 귀 기울이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뭔가 가르치려 들고, 충고나 조언을 해 주어야 할 것 같고 그렇잖아요. 그러니 자꾸 엄마가 대화의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가르치려 드는 대화, 충고나 조언하는 대화는 아이는 듣기 싫겠지요. 이런 대화는 생각을 나누는 대화는 아닐 겁니다. 아이의 깊은 생각까지 들을 수 없을 겁니다. 생각을 강요하는 대화, 생각을 점검하는 대화이기 때문이지요. 엄마의 마음은 아이의 마음에 깊이 파고들어 가고 싶은데 아이의 마음은 끄떡도 않고 마음 바깥에 서 있습니다. 혹시 아이가 말을 했더라도 깊은 생각을 들려주는 대화는 분명 아니었을 겁니다. 


똑같은 하늘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인데, 어떤 때는 힘들어서 흐르는 눈물이고, 이럴 때는 위로받은 느낌에 감동받아서 흐르는 눈물이라고 자기 입으로 저절로 자연스럽게 말해주는 이 음악 같은 말을 언제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온전히 들으려는 마음의 귀, 아이의 마음까지 다가가려는 광부의 스포라이트 불빛 같은 마음의 빛으로만 아이와 접선하겠다는 선한 의도만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랬구나, 그럼 우리 지금 베란다로 같이 나가볼까?"

이 말과 이 마음이 아이의 마음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스포라이트 불빛이었다고 생각합니다. 








MKTV에 구글 매니저 조용민님이 나왔더라고요.

인재를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는지 물으니 협업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협업을 잘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감하는 능력,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감력이 좋고 소통이 잘 되어야 서로의 생각을 깊이 나눌 수 있습니다. 창의적 상상력도 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때 더 밖으로 튀어나올 때가 많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실천해 나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공감과 소통의 능력은 필수입니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끝까지 나아가게 하는 힘은 함께 손잡고 나아갈 때가 훨씬 더 강력합니다. 서로 격려해주고 응원하면서 개인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최대치로 발휘되도록 서로를 돕는 에너지입니다. 이럴 경우 물론 결과가 좋을 것입니다. 협업을 하는 분명한 이유는 일의 출발점에서부터 과정도 결과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구글에서 면접을 볼 때 실패나 성공을 어떻게 말하는지도 유심히 본답니다. 내가 잘해서 내가 뛰어나서 결과가 좋았다고 성공담을 말하는 사람은 뽑지 않는답니다. 실패에 대하여도 우리 팀이 뭔가 문제가 있었다든지, 회사의 시스템이 어떻다든지 이렇게 남의 탓을 하는 실패담에도 미련을 두지 않고 제외시킨답니다. 그래도 너무 아까운 인재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피드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본답니다. 피드백에 오픈된 마음이면 그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기도 한답니다. 조금 더 훈련시키면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되어서랍니다. 반면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 같아 보여도 상대의 피드백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미련 없이 떨어뜨려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구글에서 보고 싶은 건 이 사람이 공감,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창조적 상상력은 공감, 소통하는 능력을 잘 사용할 때 한껏 발휘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공감, 소통하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능력은 아닌 거잖아요. 그 훈련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정인 것 같습니다. 훈련 대상은 가족들입니다. 가족과의 대화 속에서 저절로 트레이닝이 될 것 같습니다. 가족과의 오가는 행동으로 저절로 배워질 것입니다. 특히 부모의 모습은 저절로 모델링이 될 것입니다.


평소에 이런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뭐 간단하게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 없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해 주었습니다. 

“건물 들어갈 때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 잡아주는 행동 같은 것이지요.”

이렇게 쉬운 답을 해 줍니다. 너무나 쉽지만 아무나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뒷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는 행동인지, 마지못해서 하는 행동인지, 아이들 보니까 배우라고 하는 행동인지는 아이들이 심판관일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아이들은 진심임을 알고 보고 배울 것입니다. 그것이 문을 잡아주는 행동이든 그 어떤 상대에 대한 변함없는 친절이나 배려든. 


진심으로 선한 사람, 진심으로 선한 행동일 때 따라오는 다른 것들은 저절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선함을 실천할 수 있는 대상이 내 자식들 아니던가요! 내 자식 보고 있다는 생각을 마음에 깊이 새겨 놓으면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더라고요. 없던 용기도 내어서 기어코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참 감사한 이 자리, 부모라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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