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챙기는 깨달음 하나
매주 일요일 아침 고전으로 만나는 독서모임이 있습니다.
오늘은 「헤로도토스 역사 제Ⅶ권. 폴륍니아」 처음~58장의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누 보았습니다.
“심봤다!”
독서토론도 하기 전에 벌써 이런 생각이 들면 독서 토론이 훨씬 기대됩니다.
생각이 깊이 머무는 문장이 많았습니다. 몇 문장들은 곱씹어 보고 또 곱씹어 보았습니다.
그러다 삶이랑 접점을 만나는 순간이 오면 그 문장은 글이 아니라 신의 음성처럼 들립니다.
“아 이게 이 말이구나!“
“나에게 벌어지는 이 일을 이렇게 받아들이라는 것이구나!”
오늘 아침은 이 정도로 들떠서 만났습니다.
독서토론의 시간들이 다 얼얼하게(어려워서 얼떨떨한 상태^^)) 재미있지만 특히 기다려지는 시간은 질문 만들어 생각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어떤 질문을 가져왔을까? 어떤 생각들을 나눌까?’
하는 기대와 설렘 때문입니다. 행간의 의미를 찾고 이해하느라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지만 그래서 더 스릴 있습니다. 결국, 삶에 적용할 지혜와 깨달음 하나를 분명히 건져 올리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긴 기다림 끝에 발견해 낸 이 ‘지혜’의 맛이 씹어볼수록 더 감칠맛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질문 중 가장 많은 생각을 한 질문입니다.
신이명령하는 일이므로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한다는데,
한 치의 소홀함 없이 한다는 게 어떤 뜻일까?
“~그리고 신께서 명령하시는 일이므로 한 치의 소홀함도 없으셔야 할 것이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18장, p647.-
이 문장이 포함된 내용을 조금 요약해 보면
크세르크세스를 왕으로 지명한 뒤 원정 준비를 서두르다가 다레이오스는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처음에 헬라스 원정에 별 관심이 없던 크세르크세스였지만, 그의 고종인 마르도니오스의 설득과 다른 여러 요인들이 헬라스의 침공을 부추깁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나이 원정에 착수하기 직전에 페르시아 요인들을 회의에 소집합니다. 그가 품은 야망을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며 일장연설을 한 후 아테나이 원정을 공론에 부치겠다고 합니다. 마르도니오스는 찬성을, 아르타바노스는 반대 의견을 내어 놓습니다. 특히 아르타바노스는 크세르크세스의 숙부로 아테나이 원정을 반대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설득을 합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아르타바노스의 말에 회의장에서는 화를 냈지만 밤이 되자 그 말이 마음에 걸렸고 원정을 나가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잠이 듭니다. 꿈속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헬라스 원정을 나가지 않으면 이롭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이나 크세르크세스의 꿈에 나타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니까 고민이 되어 아르타바노스와 의논을 합니다. 아르타바노스가 크세르크세스의 옷을 입고 자도 아르타바노스에게 환영이 나타납니다. 왕의 헬라스 원정을 방해하지 말라면서, 운명의 흐름을 바꾸게 하다가는 당신도 벌 받게 될 거고 크세르크세스도 고통을 당하게 될 거라고 위협하며 발갛게 단 무쇠로 두 눈을 지지려 합니다. 이런 환영까지 본 아르타바노스는 왕에게 원정 준비를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신께서 명령하시는 일이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이 문장을 곱씹으면서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꿈으로 보여주든, 신탁으로 알려주든, 전조로 보여주든 신이 명령하는 일에는 토를 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인 것 같아요.
“나 못합니다. 안 하겠습니다.”
이렇게 뻗대면 안 된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기꺼이 하겠습니다.”
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도 살다가 보면 신이 명령하는 것 같은 느낌이 오는 일이 있지 않던가요?
“너, 그일 네가 해 내어야 해.” 하는 무게로 다가오는 일 말입니다.
나를 위한 일인데, 내가 이 일 잘 해내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 주로 이런 일인 것 같습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은 저절로 돕게 되는 일이겠다 싶은 것 있잖아요. 용기가 안 나서 과정이 힘들 것 같아서 안 하고 싶잖아요.
신이 명령하는데도 안 하고 마는 일이 없었는지요? 저도 제법 많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신이 명령한 일에는 과정에 온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말인 것 같아요.
과정에 최선을 다한다 해도 오차가 많이 날 텐데 어떻게 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해 낼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러고 싶어요.
나에게 시킨 신을 나의 인자한 스승으로 늘 소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령한 사람이 스승님이니까 부족한 나를 책임지셔야 합니다.”
이런 배포인 거지요. 정확하게는 믿음입니다. 이럴 경우 도와주시겠다는 믿음 말입니다.
나는 먼저 온 힘으로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말하고 또 직접 노력하는 것을 보여주어야겠지요.
우리 반 학생으로 비교를 해 보았습니다.
“선생님 이것 어떻게 플어요?”
뭐 좀 하라고 시키기라도 하면 해 보기도 전에 혹시 틀릴까 봐 불안해서 자꾸 물으러 가는 학생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어떻든, 오히려 부족하더라도 먼저 자기 스스로 온 힘으로 풀어보고 나서 내가 푼 게 맞는지? 풀다가 풀다가 모르는 문제도 그때 가져가서 도움을 청하는 거지요.
“선생님, 저 이렇게 해 봤는데 맞는지 한 번 봐주실래요?”
이런 학생이 검사 맡으러 가면 스승님 보시기에 얼마나 기특할까요?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을 거예요.
아 맞다. 좋은 스승님은 절대 알려주지는 않을 테니까(^^) 힌트라도 살짝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구~, 너무 기특해서 끝까지 손잡아서 훌륭한 학생으로 만들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나에게 명령한 신에게 이런 착한 학생이었는지 생각을 해 봅니다.
명령했다고 투정만 하더니, 노력도 안 해 보고 잘 안 된다고 도와주지 않는 신의 탓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를요.
와, 이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신이 나를 찜해 주지도 않을 텐데, 미리 김칫국 마시는 건 아니었는지를요.
능력 있는 사람에게 명령을 내릴 거잖아요. 자신을 대신해서 뭔가 세상을 이롭게 할 사람을 찜할 거잖아요. 시켜도 될 사람에게 일을 시킨다는 거지요. 믿음이 가는 사람을 선택한다는 겁니다.
‘나는 신이 보시기에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일지…….’
‘나를 아직 찜해 주지 않는 건 내가 아직 신의 명령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니까…….’
‘신이 보시기에 믿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신이 찜해 줄 때까지 먼저 온 마음으로 살아내는 과정이 있어야겠구나.’
이런 깨달음을 건져 올렸습니다.
평소에 무슨 결정을 할 때의 심사숙고는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신이 나에게 명령했다는 느낌이 오면 바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심사숙고한다는 것은 신의 결정에 내가 반기를 드는 거잖아요.
신의 선택을 의심하고 따져보는 거잖아요.
자꾸 토 달고 못하겠다고 하고, 걱정부터 하면 실망될 겁니다.
‘내가 사람 잘 못 봤네.'
이런 생각을 하고는 명령할 다른 사람을 선택하러 얼른 자리를 떠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부족하지만 기꺼이 하겠습니다.”
“능력은 신이 채워주실 거잖아요. 온 마음으로 해 보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1. 신의 명령이라 생각이 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받아들일 것
2. 한 치의 소홀함 없이 해 낼 수 있도록 좋은 스승님과 착한 학생 사이로 지낼 것
3. 무엇보다 내가 신의 명령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반성, 또 반성해 볼 것.
오늘은 깨달음 세 가지나 가슴에 안은
오랜만에 고전에 흠뻑! 빠져본 시간이었습니다.